DNA의 구조를 밝혀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분자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왓슨의 가족과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CSHL)는 그가 현지시간 11월 6일 뉴욕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 중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192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왓슨은 시카고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인디애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5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국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면서 인류 과학사의 전환점을 맞았다. 두 사람은 1953년 DNA가 두 가닥의 폴리뉴클레오타이드 사슬이 꼬여 있는 이중나선 구조임을 밝혀냈다. 이 발견은 유전정보의 복제와 전달 원리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이후 분자생물학과 유전자공학, 생명공학 산업 전반의 토대가 됐다.
생명의 비밀을 푼 나선 구조
당시 왓슨과 크릭은 단백질 구조 연구에 쓰이던 X선 회절 사진과 분자 모형을 바탕으로, DNA가 두 가닥의 사슬이 서로 꼬인 나선형 형태를 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각 가닥은 염기쌍이 짝을 이루며 정보를 저장하고, 이 짝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에서 세포는 유전정보를 복제한다. 마치 지퍼를 여닫듯 작동하는 이 구조 덕분에 생명은 세대를 넘어 정보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단순하지만 완벽한 대칭성을 지닌 이중나선은 이후 모든 생명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고, 생명이 ‘정보로 이루어진 체계’라는 새로운 관점을 열었다.

창가 너머로 보이는 연구소 건물, 책과 서류가 쌓인 책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대화는 1953년 ‘이중나선 모델’이 탄생하기 전의 생생한 연구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 장면은 이후 과학사에서 상징적인 사진으로 남았다. 젊은 두 과학자가 호기심과 열정으로 나눈 대화 속에서, 생명정보의 구조를 푼 20세기 최대의 발견이 싹텄기 때문이다.
[사진=BBC]
왓슨과 크릭은 이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제공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공로가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68년부터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분자유전학 연구를 이끌며 생명과학 발전의 중심에 섰다. 1990년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초대 책임자로 임명돼 인류의 전체 유전정보 해독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부 DNA 서열의 특허화에 반대하며 사퇴했고, “유전정보는 인류의 공유 자산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7년에는 세계 두 번째로 자신의 전체 게놈 염기서열 분석을 완료하며 과학사에 또 한 장을 남겼지만, 그해 이후 그의 행보는 논란으로 얼룩졌다.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인의 지능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거센 비판을 받았고, 결국 CSHL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사과 후에도 재정난에 시달리며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2019년에도 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인종 간 지능 차이를 주장하면서 명예직에서 모두 해임됐다. 과학계의 선구자이자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로 남은 그는, DNA 구조 발견으로 생명과학의 시대를 연 동시에 과학자의 언행이 초래한 사회적 책임 논란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왓슨의 생애는 과학의 영광과 인간적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20세기 과학사의 복합적 초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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