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을 사는 고래, 세포를 스스로 지키는 생명력의 비밀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북극의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가는 보우헤드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포유류다. 수명이 200년에 이르지만 암이나 노화성 질환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인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질병에 취약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떻게 거대한 몸집과 수많은 세포를 가진 이 동물이 수백 년 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암을 피해가는 거대한 생명체

보우헤드고래는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세포 수가 많고 수명이 길수록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코끼리나 고래처럼 덩치가 큰 동물은 오히려 암에 강하다.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이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고래의 세포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인간과 달리 고래의 세포는 돌연변이가 축적되는 속도 자체가 매우 느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포가 오랜 세월 분열해도 손상이 거의 누적되지 않아, 고래는 자연스럽게 노화와 암을 억제한다.

북극고래.The bowhead whale ( Balaena mysticetus)


보우헤드고래와 인간 세포의 노화·DNA 복구 능력을 비교한 실험 결과. 고래 세포는 방사선이나 스트레스에도 노화세포 증가가 거의 없고, DNA 손상 복구 효율이 높다. 세포 사멸 비율도 낮아 장수와 암 저항성의 세포적 기반을 보여준다. [사진=Nature(2025) Gorbunova et al.]

DNA를 복구하는 단백질 CIRBP

연구진은 그 핵심을 CIRBP(cold-inducible RNA-binding protein)라는 단백질에서 찾았다. 이 단백질은 DNA의 이중가닥이 끊어졌을 때 복구를 담당한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이런 손상을 완벽히 복구하지 못해 노화가 진행되지만, 보우헤드고래는 CIRBP가 손상을 빠르게 복원해 유전정보를 안정적으로 지킨다. 고래 세포에서는 이 단백질이 다른 포유류보다 약 100배 더 많이 생성된다. 연구진이 고래의 CIRBP를 인간 세포와 초파리 세포에 주입했을 때 DNA 복구 능력이 향상됐고, 초파리의 수명도 늘어났다. CIRBP는 손상을 복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돌연변이 발생을 막아 세포 안정성을 두 겹으로 보호한다.

보우헤드고래의 CIRBP 단백질이 DNA 이중가닥 손상을 빠르고 정확히 복구하는 과정을 도식화한 그림. 고래는 높은 CIRBP 발현으로 유전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암 발생 위험이 낮고, 인간은 복구 효율이 떨어져 유전자 불안정이 누적된다. [사진=Nature(2025) Gorbunova et al.]

추위에 적응한 생명 시스템

CIRBP는 이름 그대로 ‘차가움에 반응하는 단백질’이다. 세포의 온도를 몇 도만 낮춰도 생성량이 크게 늘어난다. 북극의 혹한 속에서 진화한 보우헤드고래는 이러한 환경에 맞춰 세포가 스스로 방어 체계를 강화하도록 적응했다. 냉자극이 세포 내부의 복구 시스템을 활성화해 손상을 예방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찬물 샤워 같은 가벼운 냉자극이 사람의 CIRBP를 활성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하지만, 인체에서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동물의 몸 크기와 세포 돌연변이율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몸집이 클수록 세포 수가 많지만, 돌연변이 발생률은 오히려 낮다. 쥐(0.02kg)에서 인간(70kg), 코끼리(4800kg), 고래(3만6000kg)로 갈수록 세포 하나당 돌연변이율이 급격히 줄어든다. 이는 큰 동물일수록 암 발생률이 낮은 ‘페토의 역설(Peto’s paradox)’을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사진=Royal Society Publishing]

연구를 이끈 베라 고르부노바 교수는 “보우헤드고래는 인간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 유일한 온혈동물”이라며 “유전자 손상을 신속히 복구하는 능력이 장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CIRBP의 작동 과정을 더 정밀하게 분석하고, 인간 세포에서도 이 단백질의 경로를 활성화할 방법을 찾고 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Denis Firsanov et al, Evidence for improved DNA repair in long-lived bowhead whale, Nature (2025). DOI: 10.1038/s41586-025-09694-5

자료: Nature /  University of Rochester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