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을 따라 밀물이 가장 높이 오르는 바위에까지 다닥다닥 빼곡하게 붙어사는 검은색 조개류가 홍합(紅蛤)이다. 한국인들이 즐겨 식용하는 해산물인 홍합은 밀물이 오르는 최고 위치(만조선滿潮線)에서도 생존하면서 바다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귀중한 생명체이다.
홍합이란 붉은(紅) 조개(蛤)라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담치 또는 섭’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계의 바다에는 여러 종류의 홍합이 있으며, 민물에 사는 종류(약 300종)도 있다. 그들 중에는 껍데기 색이 검은 것, 청색, 보랏빛, 초록 등 다양한데, 안쪽 면은 진주 광택이 나는 우윳빛이다.

세계적으로 17종의 홍합이 식용되고 있다. 홍합을 가장 많이 수확하는 나라는 중국(40% 수확)이다. 사진은 타일랜드 바다에 사는 초록빛 홍합(Perna viridis)이다.
홍합의 특별한 특징의 하나는 그들이 바위에 붙을 때 사용하는 몇 가닥의 실처럼 생긴 족사(足絲)이다. 이 족사는 아무리 심한 파도가 쳐도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 또 족사는 바위만 아니라 목재, 로프 등 무엇이라도 수중에서 접착하는 놀라운 성질이 있다.
기생박테리아가 홍합을 보호
썰물이 되면 홍합이 붙어사는 바위는 햇볕에 드러나 밀물이 들 때까지 뜨겁기도 하고 매마른다. 이런 곳에 사는 홍합의 껍데기는 태양열을 잘 흡수하는 검은색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높은 온도에서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를 궁금하게 생각한 남아프리카 로데스 대학의 여성 해양생물학자 니카스트로(Katy Nicastro)는 동료들과 함께 유럽 여러 나라의 해안에서 중요한 연구를 했다.
니카스트로는 홍합들의 껍데기가 회백색으로 변한 것이 많은 것을 발견했고, 그 원인을 조사한 결과, ‘시아노박테리아’가 표면에 증식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아노박테리아는 홍합 껍데기에 붙어 사는 동안 표면을 부식시켜 나중에는 구멍을 뚫어 죽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관찰에 의하면, 껍데기가 회백색으로 변한 홍합들이 검은 것보다 더 잘 생존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니카스트로 연구팀은 포르투갈에서부터 스코틀랜드 최북단의 해안까지 9곳에서 검은 껍데기와 회백색 껍데기의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홍합의 속살(근육)을 도려내고 그 속에 작은 온도측정기를 넣은 후, 껍데기를 접착제로 서로 붙여 놓았다. 이후, 그들은 홍합이 물에 잠겨 있는 동안과 햇볕에 드러난 동안의 내부 온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흰 얼룩이 있는 홍합의 내부 온도가 검은 것들보다 평균 8℃나 낮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껍데기가 회백색으로 변한 얼룩 부위에는 시아노박테리아가 기생하고 있다. 2017년 8-9월 두 달 동안, 홍합 내부의 온도를 비교했다. 회백색으로 변한 껍데기들은 햇빛을 적게 흡수한 결과 내부 온도가 훨씬 낮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조개껍데기의 적외선 사진이다. 오른쪽 검은 껍데기는 내부 온도가 훨씬 높다. 지나친 고온은 홍합을 열사(熱死)시킬 수 있다. 니카스트로는 그들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 <Global Change Biology> 2021년 6월호에 발표했다.
홍합의 껍데기에 미생물이 기생하면 홍합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니카스트로 팀의 연구는 ‘기생 미생물인 기주(寄主)와 기생을 당하는 숙주(宿主)인 홍합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하게 되었다.
홍합은 해산물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안의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홍합이 사는 해변은 대부분이 조수(潮水)가 드나드는 곳이다. 따라서 밀물시간에는 그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바위가 햇볕에 드러나 주변이 말라버리게 된다. 그러나 홍합이 무더기로 붙어 있는 곳은 다음 밀물 때까지 습기를 어느 정도 유지한다. 이때 홍합껍데기의 그늘진 틈새와 주변은 완전히 말라버리지 않고 또 온도도 시원하기 때문에 작은 게와 실갯지렁이, 갯강구, 해삼의 새끼, 말미잘과 같은 작은 동물과 해조류까지 생존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위를 보면, 햇볕에 전부 말라버릴 것 같지만, 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주변에서 건강하게 살아간다. 홍합과 따개비 등이 착생(着生)하는 주변에는 수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소형 동식물도 함께 살아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족사에서 분비되는 접착제 성분은 dihydrophenylalanine(DOPA)라 불리는 단백질의 일종이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과학자들은 DOPA를 연구하여 초강력 인공접착제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DOPA는 인체 내부의 수술자리를 바늘로 꿰매지 않고 봉합(封合)할 때 사용한다.
홍합과 기타 해양생명체들이 가득 붙은 선박은 항해할 때 물의 저항을 받아 속도가 느려지고 연료도 많이 소비하게 된다. 뱃바닥이나 바다의 인공구조물에 따개비, 홍합, 해조류 등의 생명체가 붙어사는 것을 생물부착(biofoulding)이라 한다. 세계적으로 뱃바닥(선저船底)에 사는 생명체를 청소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수십억 달러라고 한다. 그들을 죽이는 화학제를 사용할 수 있으나. 이런 물질은 다른 생명체에게도 피해를 주므로 실용되지 못한다. 부착생물체가 분비하는 접착단백질을 분해하는 물질이 포함된 무해(無害)한 도료(塗料)도 연구되고 있다.

홍합을 삶은 수프가 맛있는 이유는 조미료의 주성분인 글루탐산 외에 타우린, 아르기닌, 글라이신 등의 아미노산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근년에 와서 뉴질랜드 근해에서는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홍합이 집단적으로 죽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홍합은 많은 나라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공양식한다. 필리핀에서는 인공부화시킨 씨홍합(크기 1mm 정도)을 대나무에 붙도록 하여 양식한다. 뗏목, 로프 등에 부착시켜 양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2년 후 수확한다.
홍합은 오염된 바다에서도 잘 견디는 강인한 생명체이다. 그들은 바닷물이 들었을 때 껍데기를 열어 물속의 플랑크톤을 걸러서 먹고산다. 바다에 나가면, 홍합과 그들 주변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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