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평균 기온 영하 60도, 대기 압력은 지구의 1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화성에서 과거에는 지구의 열대 지방처럼 따뜻하고 습윤한 기후가 유지됐으며, 장기간 폭우가 내렸음을 시사하는 지질학적 증거가 새롭게 확인됐다.
과학전문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7일(현지시간) 미국 퍼듀대 연구진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지구&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화성의 암석이 준 힌트···물에 장기간 반응한 흔적
연구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로버 퍼시비어런스가 촬영한 화성 표면의 밝은 색 암석을 분석한 결과, 이 암석이 알루미늄이 풍부한 점토 광물인 카올리나이트(kaolinite)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암석은 일반적인 현무암 위주의 화성 암석과 달리 하얗게 탈색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규산염과 철 성분이 용탈돼 제거되고 알루미늄 성분만 남은 화학적 풍화 구조를 보여 장기간 물과 반응했음을 나타낸다.
지구에서 카올리나이트는 주로 열대우림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형성된다. 수백만 년 동안 반복된 강우가 규산염 광물과 철 성분을 씻어내고, 상대적으로 화학적으로 안정한 알루미늄 성분이 남으면서 생성된다. 강수량, 기온, 그리고 물이 지표에 오래 머무는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만들어지는 점토 광물이다. 연중 대부분이 영하의 기온에 놓여 있고, 액체 상태의 물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현재의 화성과는 형성 조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구 주저자인 퍼듀대 토양학자 에이드리언 브로즈는 차갑고 건조한 현재의 화성에서 카올리나이트가 발견됐다는 점은, 과거 화성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했고, 그것이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으로 순환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점토가 일시적인 홍수나 국지적인 얼음 융해가 아니라, 지속적인 강우와 풍화 작용이 반복된 환경에서 형성됐다는 점이 이번 발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퍼시비어런스가 포착한 화성 카올리나이트의 반사율 스펙트럼과 미세 구조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에서 채취한 지구의 카올리나이트 시료와 정밀 비교했다. 그 결과 결정 구조와 화학 조성, 광학적 특성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일치해 두 암석이 거의 동일한 지질학적 조건에서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화성 표면, 강·호수·삼각주 지형 남아있어
위성 영상 분석에서도 추가적인 단서가 확인됐다. 퍼시비어런스가 탐사 중인 예제로 크레이터 일대 외에도 화성 여러 지역에 더 넓은 규모의 카올리나이트 퇴적층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 km 이상 연속된 점토층이 노출된 형태도 확인됐다. 다만 이 지역들은 아직 어떤 탐사선도 직접 접근하지 못한 상태다.
카올리나이트의 존재는 화성이 단순히 일시적으로 따뜻해졌던 행성이 아니라, 상당 기간 동안 안정적인 강수 순환과 지표수 환경을 유지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는 화성 표면에 강, 호수, 삼각주 지형이 남아 있다는 기존 지형학적 증거들과도 일치한다. 퍼시비어런스가 탐사 중인 예제로 크레이터 역시 과거 대형 호수였던 지역으로, 퇴적층 구조와 광물 조성이 물의 장기적 존재를 꾸준히 시사해 왔다.
다만 현재의 화성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차갑고 건조한 행성으로 변했는지는 여전히 행성과학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가설은 약 30억~40억 년 전 화성 내부 냉각이 진행되면서 행성 자기장이 약화됐고, 그 결과 태양풍이 대기를 직접 침식하면서 대량의 수분이 우주 공간으로 유실됐다는 시나리오다. 여기에 대기 손실 속도, 극지방 얼음의 이동, 지하수의 동결과 증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확인된 고대 카올리나이트 점토층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와 이후의 보존 과정을 규명할 경우, 화성 대기 진화의 시간표를 보다 정밀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로즈는 모든 생명체가 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발견은 과거 화성의 잠재적 거주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논의를 한 단계 더 구체화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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