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이유, 스트레스 아니라 장 때문? 장내세균-불면증, 인과 관계 첫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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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 38만명 데이터 분석…수면 방해균·보호균 구체 확인

잠 못드는 밤은 괴롭다. 밤마다 뒤척이며 잠을 설치는 건 스트레스나 생활 습관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장 속에 사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수면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대규모 연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떤 세균은 숙면을 방해하고, 또 어떤 세균은 오히려 깊은 잠을 돕는다. 이러한 놀라운 사실이 수십만 명의 유전체와 장내세균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특정 장내세균-불면증 인과관계 밝혀져

중국 난징의과대학교 부속 뇌병원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와 국제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의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장내세균이 불면증의 원인이 되는지’ 혹은 ‘불면증이 장내 환경을 변화시키는지’를 유전적 인과관계 분석을 통해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장내세균이 ‘장-뇌 축’을 통해 신경 신호, 호르몬 분비, 면역 반응을 조절함으로써 수면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특정 세균 집단은 불면증 위험을 높이고 다른 세균 집단은 이를 완화하는 보호 역할을 한다는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규명했다. [사진=Midjourney 제작 이미지]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는 방대하다. 영국 바이오뱅크에서 모집된 38만6,533명의 유전체 자료(이 중 불면증 환자 10만9,402명 포함)와, 장내세균 유전 정보가 포함된 MiBioGen 연합 데이터 1만8,340명, 네덜란드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 8,208명의 데이터가 결합됐다. 이는 수면과 장내세균의 관계를 탐구한 연구 중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규모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단순한 ‘관찰 통계’에서 발생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멘델 무작위화(Mendelian randomization) 기법을 적용했다. 이 방법은 선천적으로 특정 세균의 보유량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유전적 변이를 기준으로 구분해 비교함으로써, 세균이 불면증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인과적으로 추론한다.

유전자는 생활습관이나 환경 요인에 의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 변수를 최소화하면서 원인과 결과를 가려낼 수 있다. 이번 분석은 불면증과 장내세균 사이의 원인·결과 관계를 식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불면증과 관련된 장내세균

연구 결과, 일부 세균은 불면증 위험을 높였고, 일부는 오히려 보호 효과를 보였다.

구분대표 세균 예시특징
위험균클로스트리디움 이노쿰 그룹(Clostridium innocuum group), 프레보텔라 7(Prevotella 7) 등장내 염증 반응 증가, 불면증 위험 상승
보호균코프로코쿠스 1(Coprococcus 1), 락토코쿠스(Lactococcus), 오도리박터(Odoribacter) 등뇌 신호 조절 물질 생성, 수면 질 향상

장-뇌 축과 수면, 그리고 식습관의 역할

장과 뇌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양방향 신경·호르몬·면역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장내세균은 이 경로를 통해 수면의 질과 뇌 기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예를 들어, 일부 보호균은 식이섬유와 특정 영양소를 분해해 단쇄지방산(SCFA)인 아세테이트·프로피오네이트·부티레이트를 만든다. 이 물질들은 장벽을 강화하고 전신 염증을 완화하며, 뇌에 작용해 신경 신호의 안정성을 높인다. 또 다른 세균은 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세로토닌으로 바꾼 뒤 멜라토닌으로 전환시켜 수면-각성 주기를 조율한다.

장과 뇌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 불리는 양방향 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다. 이 네트워크에는 미주신경을 포함한 신경계, 호르몬 전달 경로, 면역 반응 체계가 모두 관여하며, 장내세균은 이 경로를 통해 신경 신호 조절, 호르몬 분비, 염증 반응 완화 등에 영향을 미쳐 수면의 질과 뇌 기능에 직·간접적으로 작용한다. [사진=Midjourney 제작 이미지]

반대로 수면 부족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와 염증 반응을 유발해 장내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특정 세균이 과도하게 번성하는 상황을 만든다. 오도리박터(Odoribacter) 속이 그 대표적 예로, 불면증이 이 세균의 증식을 촉진하고, 증식한 세균이 다시 수면에 불리한 환경을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러한 장-뇌 연결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장내세균이 선호하는 ‘먹이’를 꾸준히 공급하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코프로코쿠스 1(Coprococcus 1)은 식이섬유와 폴리페놀이 풍부한 통곡물, 잎채소, 콩류, 베리류, 차류에서 에너지를 얻어 SCFA와 세로토닌 전구체를 만든다. 오도리박터는 다양한 식물성 식품과 적당한 양의 가금류·어류 단백질에서 SCFA를 생성하고 장내 염증을 조절한다. 락토코쿠스(Lactococcus)는 발효식품을 통해 장에 들어와 pH 균형을 유지하고 유해균을 억제하는데, 정착성은 낮아 요거트, 케피어,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템페 등을 자주 섭취해야 효과가 지속된다.

장-뇌 축(gut-brain axis) 고려한 불면증 치료 가능성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불면증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뇌 기능만을 겨냥한 기존 접근에서 벗어나, 장-뇌 축(gut-brain axis)을 함께 고려한 전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향후에는 장내세균 분석을 통한 위험 진단, 프로바이오틱스·프리바이오틱스·식이조절·미생물 이식 등 장내세균을 표적으로 한 치료 전략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면장애와 장내 미생물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로,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수면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General Psychia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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