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아펜니노 곰, 인간 가까이 살더니 ‘더 작고 상냥해졌다’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 산맥에 서식하는 갈색곰이 인간 거주지와의 장기적인 공존 속에서 체구가 작아지고 공격성이 낮아진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마을이 많은 지역에서 살아온 곰일수록 이러한 특징이 뚜렷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가 발행하는 학술지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에 실린 이번 연구는 인간 활동이 단순히 개체 수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야생동물의 행동과 신체적 특성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 산맥에 서식하는 아펜니노 갈색곰(Ursus arctos marsicanus). 이 곰들은 인간 거주지와 가까운 환경에서 오랜 기간 살아오며, 다른 갈색곰 집단에 비해 체구가 작고 공격성이 낮은 특징을 보인다. 유전체 분석 결과, 공격성과 관련된 유전자에서 선택 신호가 확인돼 인간과의 공존 속에서 형성된 진화적 특성일 가능성이 제시됐다. [사진=Bruno D’Amicis /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아펜니노 갈색곰, 인간과 가까운 고립 집단

연구 대상은 아펜니노 갈색곰(Ursus arctos marsicanus)이다. 이 곰은 이탈리아 중부에만 남아 있는 소규모 고립 집단으로, 다른 유럽 갈색곰과는 약 2000~3000년 전 분화된 뒤 로마 시대 이후 완전히 격리된 상태로 살아왔다.

연구진은 이 집단의 고립과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농업 확산과 산림 개간을 지목했다. 논문 주저자 안드레아 베나초는 중앙 이탈리아에서 인간 인구 밀도가 증가하며 숲이 사라진 것이 곰의 서식 환경을 크게 제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아펜니노 갈색곰은 다른 유럽·북미·아시아 갈색곰과 비교해 체구가 작고, 머리와 얼굴 형태가 다르며, 공격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이러한 차이는 주로 개체 수 감소나 유전적 고립의 결과로 해석돼 왔다. 이번 연구는 이 특성들이 단순한 우연이나 쇠퇴의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 의해 선택된 결과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 충돌 과정에서 공격적 개체 제거 가능성

연구진은 아펜니노 갈색곰의 염색체 수준 기준 유전체를 새로 구축하고, 여러 개체의 전장 유전체를 분석했다. 이를 슬로바키아의 대규모 유럽 갈색곰 집단과 미국 갈색곰 유전체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아펜니노 갈색곰은 예상대로 유전적 다양성이 낮고 근친교배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동시에 공격성과 관련된 유전자에서 뚜렷한 선택 신호가 확인됐다. 공동저자 줄리아 파브리는 인간과의 충돌 과정에서 공격적인 개체가 제거되면서, 상대적으로 온순한 성향을 가진 유전적 변이가 집단 내에 남고 강화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 산맥 인근 마을 경계에서 포착된 아펜니노 갈색곰(Ursus arctos marsicanus). 인간 거주지와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온 이 곰 집단은 다른 갈색곰에 비해 체구가 작고 공격성이 낮은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갈등은 줄었지만 위험은 남아 있다

연구진은 인간의 서식지 확장이 이 곰 집단의 개체 수 감소와 유전적 취약성을 초래했지만, 동시에 인간과의 충돌을 줄이는 방향의 진화를 유도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동저자 조르조 베르토렐레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상호작용은 종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상황에서는 갈등을 완화하는 형질의 진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런 특성이 보전 정책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부 개체를 도입해 개체 수를 늘릴 경우, 인간과의 공존 속에서 형성된 유전적 특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인간 활동이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이 단순한 파괴에 그치지 않고, 진화의 방향 자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Coexisting with humans: genomic and behavioural consequences in a small and isolated bear population,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025). DOI: 10.1093/molbev/msaf292

자료: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 Oxford University Press 

관련 기사: 일본 곰 습격, 인간 거주지 새 경로로 학습···최악의 상황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