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도 관계를 마음속에 저장한다…사회적 지능, 인간만의 고유 능력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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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인간만이 가진 고유 능력으로 여겨졌던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이 유인원에게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연구진은 보노보 ‘칸지(Kanzi)’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실험에서 이 같은 능력을 확인했다.

보이지 않는 동료의 정체와 위치를 기억하는 능력이 사람뿐 아니라 보노보와 침팬지에게도 있다는 점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여겨졌던 지능의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험에서 ‘사회적 지능’을 입증한 보노보 칸지

보노보 ‘칸지(Kanzi)’는 숨바꼭질(hide-and-seek) 실험에서 눈앞에 없는 대상을 마음속으로 추적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사육사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칸지는 그들의 존재와 위치를 기억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 목소리만으로도 사육사를 정확히 구별했는데, 이는 보노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다. [사진=Ape Initiative]

미국 존스홉킨스대 크리스 크루페니 교수팀은 영국 왕립학회지 B: 생물과학(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발표한 논문에서, 칸지가 사진과 목소리 단서를 활용해 보이지 않는 사육사의 정체와 위치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는 사회적 지능이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유인원도 공유하는 인지 능력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칸지는 1980년 미국 에모리대 여키스 영장류 연구시설에서 태어나 언어 습득, 도구 제작, 사회적 행동 연구 등에서 수많은 성과를 남긴 전설적인 보노보다. 올해 3월 미국 아이오와주의 영장류 보호시설에서 사망했지만, 이번 실험을 통해 여전히 동물 인지 연구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연구팀은 칸지를 대상으로 다양한 숨바꼭질 과제를 수행했다. 사육사 두 명 중 한 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실제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내도록 하거나, 사람이 숨어드는 과정을 가려 보여주지 않은 뒤 칸지가 머릿속 표상을 통해 추적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또 칸막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듣고 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실험도 진행됐다.

보노보 ‘칸지’의 숨바꼭질 실험
연구팀은 칸지가 단순히 ‘마지막 본 위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없는 대상의 정체와 위치를 마음속으로 추적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사진과 인물 매칭(A-B): 두 사육사를 보여준 뒤 사진 속 인물을 가리키게 훈련하고, 각각 다른 가림막 뒤에 숨게 한 뒤 사진을 제시해 해당 사육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도록 함.
위치 교환 실험(C): 사육사가 숨은 뒤 가림막 위치를 바꿔, 칸지가 단순히 ‘직전 위치 기억’이 아니라 실제 인물 이동을 추적하는지 확인.
목소리 단서(D): 가림막 뒤에서 사육사가 말을 하게 해, 칸지가 목소리만으로 사진 속 인물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
물체 추적(E-F): 사육사 대신 열쇠와 숟가락을 숨긴 뒤 사진을 보여주고 해당 물체의 위치를 맞히게 하고, 가림막 위치를 바꿔 물체 이동을 마음속으로 추적할 수 있는지 확인.
[자료=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Christopher Krupenye et al.)]

유인원도 감각을 통합해 관계를 기억한다

실험에서 보노보 ‘칸지’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자극에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사진과 목소리만으로도 사육사를 정확히 구별했고,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숨어 있어도 혼동 없이 각자의 위치와 정체를 추적했다. 이는 보노보가 얼굴 사진과 목소리 같은 시각·청각 단서를 결합해 대상을 떠올리는 ‘다중 양식적 표상(multimodal representation)’을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보노보도 감각 정보를 통합해 부재 중인 대상을 마음속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논문 제1저자인 루스 카르바할 연구원은 “칸지는 과제를 빠르게 이해했고, 사람을 사진뿐 아니라 목소리만으로도 식별했다”며 “이는 보노보 연구에서 처음 확인된 능력으로, 인간과 유인원이 공유하는 인지적 토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크리스 크루페니 교수는 “사회적 지능은 복잡한 관계망을 관리하기 위해 인간에게만 진화한 고유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며 “그러나 이번 결과는 유인원도 눈앞에 없는 사회적 파트너를 기억하고, 정체와 위치를 함께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회적 인지는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유인원에게도 깊이 자리 잡은 특성”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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