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넘긴 야생동물 영상, 알고 보니 AI?···현실 기준 왜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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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화면 속 토끼가 트램펄린 위를 통통 튀어 오른다. 두 귀가 공중에서 펄럭이고, 착지할 때마다 몸이 만화처럼 탄력 있게 휘어진다. 다음 영상에서는 너구리가 악어 등에 올라탄 채 느긋하게 균형을 잡는다. 또 다른 클립에서는 표범이 교외 주택의 잔디를 가로지르고, 집 고양이가 당당하게 달려들자 슬쩍 물러난다.

소셜미디어를 스크롤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연달아 등장한다. 웃음이 나고, 신기하고, 댓글 창에는 귀엽다, 영화 같다, 진짜냐는 반응이 이어진다. 대부분은 AI로 생성된 영상이지만, 화면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기 전까지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는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는 각종 야생동물 영상은 AI로 생성된 것들이 많아 현실 자연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 [사진=New Atlas]

현실과 섞여버린 디지털 야생

스페인 코르도바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확산되는 AI 생성 야생동물 영상이 대중의 동물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실제 촬영 영상처럼 보이는 합성 이미지와 영상들이다. 동물의 털 결, 움직임, 빛 반사까지 정교하게 구현돼 한눈에 가짜임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런 콘텐츠는 실제 야생동물 행동과 장난스러운 상상을 교묘하게 결합한다. 여우가 우편물을 물고 달아나고, 카피바라가 반려견과 욕조를 공유하며, 맹수가 인간의 생활 공간을 자연스럽게 드나든다. 영상은 짧고 자극적이며,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확산된다.

웃고 넘기는 순간 생기는 착각

많은 이용자는 이 영상을 가볍게 소비한다. 진짜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면의 몰입감 때문에 잠시 판단을 미룬다. 댓글에는 영화 CG 같다, 요즘 AI 무섭다, 그래도 귀엽다는 반응이 섞인다.

문제는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뇌가 이를 낯선 예외가 아니라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특히 어린 연령층을 우려한다. 예컨대 아이가 형이나 누나의 휴대전화로 인스타그램을 보다 AI 영상 하나를 시청하면, 추천 알고리즘은 유사한 장면을 연달아 보여준다. 설명해 줄 어른이 없다면, 그 세계가 자연의 표준처럼 자리 잡을 수 있다.

바이럴 영상이 만드는 왜곡된 기준선

연구는 한 사례를 언급한다. 집 고양이가 뒷마당에 들어온 표범을 쫓아내는 AI 생성 영상은 좋아요 100만 건 이상, 공유 1만5000건 이상을 기록했다. 수많은 이용자에게 이 장면은 실제 야생동물 목격담처럼 소비됐다.

주저자 호세 게레로-카사도는 이런 영상이 현실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지적한다. 포식자와 먹잇감이 함께 놀고, 위험한 동물이 위협적이지 않게 묘사되며, 인간 생활권과 야생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는 동물의 행동, 생태적 관계, 그리고 서식 환경에 대한 인식을 흐린다.

AI 영상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희귀한 종조차 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보호구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 주택가를 배회하고, 맹수는 장난스러운 캐릭터로 소비된다. 그 결과 실제 개체 수 감소나 서식지 파괴의 심각성이 체감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런 왜곡이 보전 인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사람들은 위기를 시각적으로 느낄 때 행동에 나선다. 하지만 디지털 자연 속에서는 멸종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실감 나지 않는다.

보전을 어렵게 만드는 가짜 친숙함

공동저자 로시오 세라노는 이미 시민과 야생동물 사이의 단절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서 지역 동물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AI 영상은 잘못된 친숙함을 만든다. 취약한 종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면, 보호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린다.

보전 단체와 과학 커뮤니케이터 입장에서는 현실을 설명할 언어와 이미지가 경쟁력을 잃는다. 실제 자연은 느리고 조용하지만, 합성 영상은 빠르고 극적이다.

연구진은 해당 영상에 대한 명확한 AI 표시, 플랫폼의 책임 강화, 그리고 이용자 교육을 강조한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합성인지 구분할 수 있을 때, 영상은 오락으로 소비되고 현실 인식은 지켜진다. 

이 연구는 학술지 Conservation Biology에 게재됐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Conservation Biology

자료: University of Córd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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