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질량의 85%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다크매터)로 채워져 있다. 은하가 빠르게 회전하고 우주의 거대한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도 모두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망원경과 입자 충돌기가 총동원됐음에도, 정체를 확인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이제 또 다른 전략을 꺼내 들었다. 거대한 장비 대신, 원자핵 속을 들여다보는 초정밀 시계다. ‘핵시계(nuclear clock)’라 불리는 이 장치는 핵 내부의 미세한 전이를 측정해 시간을 잰다. 시간이 곧 물리 세계의 가장 정밀한 눈금자라면, 이 시계는 암흑물질이 남기는 흔적을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창이 될 수 있다.

토륨-229로 여는 새로운 탐색 창
핵시계는 전자의 양자 상태 변화를 이용하는 원자시계와 달리, 원자핵 내부 전이를 측정한다. 이때 핵심은 토륨-229 동위원소다. 이 핵은 1970년대 발견된 특이하게 낮은 들뜸 에너지를 지녀, 레이저 분광으로 직접 관찰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원자핵이다. 전자보다 외부 간섭에 강한 핵 전이는 암흑물질이 남길 미세한 흔적을 감지할 수 있는 최적의 ‘센서’가 된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독일 PTB(연방물리기술연구소)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얻은 토륨-229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만약 초경량 다크매터가 파동처럼 지구를 스쳐 간다면, 단순히 공명 주파수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 전체 모양(line shape)이 왜곡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제 데이터와 이론 모델을 비교해, 다크매터가 핵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범위를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제한했다.
정밀도의 도약과 파급 효과
현재 분석된 스펙트럼의 선폭은 약 20기가헤르츠로 다소 넓었으나, 최근 실험에서 이를 300킬로헤르츠까지 줄였다. 향후 수백 헤르츠 단위까지 좁히게 되면 핵시계는 원자시계를 넘어서는 민감도를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력보다 10조 배 약한 힘도 감지하고, 기존 암흑물질 탐색보다 10만 배 높은 정밀도로 우주를 살필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단순히 다크매터 탐색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물리 법칙 검증, 초정밀 통신과 항법, 심우주 탐사에도 응용될 수 있다고 본다. 공동 연구자인 볼프람 라칭거 박사는 “주파수의 이동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스펙트럼 전체를 관찰해야 다크매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 암흑물질은 그림자처럼 숨어 있지만, 핵시계는 물리학자들이 미지의 우주를 탐색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더 정밀해진 새로운 시계가 작동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닿지 못했던 우주의 깊은 층위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Physical Review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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