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의 심장은 대부분 왼쪽에 있을까. 그 답의 실마리가 세포 안, 더 정확히는 분자의 미세한 방향성에서 나왔다. 일본 RIKEN 연구진은 분자 수준의 키랄성, 즉 오른손형·왼손형 구조가 어떻게 세포 전체의 방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이는 장기가 좌우 대칭을 이루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키랄성은 거울에 비춰도 완전히 겹치지 않는 비대칭성을 뜻한다. DNA, 아미노산, 단백질처럼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 분자 대부분은 이런 성질을 가진다. 이론적으로 분자의 방향이 반대였다면, 우리 몸의 좌우 구조 역시 지금과 전혀 달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분자의 비틀림이 어떻게 세포, 조직, 장기 수준의 방향성으로 확장되는지는 오랫동안 명확히 설명되지 못한 영역이었다.

일부 세포는 왜 특정 방향의 회전을 보일까
연구를 이끈 Tatsuo Shibata 연구팀은 초파리의 생식 조직이 반복적으로 시계 방향 회전을 보인다는 관찰에서 출발했다. 이 일관된 방향성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분자 수준까지 거슬러 올라가 밝히고자 했다.
개별 세포를 평평한 기판 위에 놓고 관찰한 결과, 특정 조건에서 세포핵과 그 주변의 세포질이 위에서 보면 통계적으로 시계 방향 회전을 더 자주 보이는 현상이 확인됐다. 외부에서 방향을 지시하는 신호는 없었다. 회전의 원인은 세포 내부 구조, 즉 세포 골격에 있었다.
액틴과 미오신으로 구성된 세포 골격은 동심원 형태로 배열돼 있었다. 이 구조가 수축과 상호작용을 반복하면서, 세포 내부에 방향성이 있는 회전력을 만들어냈다. 세포는 마치 내부에서 생성된 힘에 의해 천천히 회전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뚜렷한 비대칭이 없어도 회전은 생긴다
흥미로운 점은 세포 전체가 겉보기에는 좌우로 기울거나 비틀린 형태를 띠지 않아도, 내부에서 방향성 있는 회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세포 차원의 구조적 비대칭이 회전의 필수 조건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세포를 단순화한 3차원 이론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에는 세포 골격을 구성하는 액틴과 미오신 분자의 물리적 성질, 특히 분자 자체가 지닌 키랄성이 반영됐다.
분석의 핵심은 액틴과 미오신이 상호작용하며 생성하는 힘의 방향성이었다. 이 분자들은 본래 오른손형 키랄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수축과 이동 과정에서 완전히 상쇄되지 않는 미세한 회전 성분의 힘을 만들어낸다. 개별 분자가 만들어내는 회전 토크는 극히 작지만, 세포 골격 전체에서 동일한 방향의 토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누적 효과가 나타난다.
모델 계산 결과, 이러한 분자 수준의 토크가 공간적으로 균형 잡힌 상태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세포핵과 주변 세포질에 실제 회전을 유도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즉, 세포 전체가 좌우 비대칭 구조를 형성하지 않더라도, 분자들의 방향성이 일관되게 작용하면 세포 내부에서 방향성 있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포의 움직임이나 방향성이 반드시 외부 신호나 명확한 구조적 비대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분자 수준의 물리적 성질이 집단적으로 증폭된 결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분자의 키랄성이 세포 차원의 동역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정량적으로 설명한 사례로,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저널 eLife에 게재됐다.
분자에서 장기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
이번 발견은 분자에서 세포, 세포에서 조직과 장기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비대칭 형성 과정의 핵심 연결 고리를 제시한다. 분자의 미세한 비틀림이 세포 내부 회전을 만들고, 이 회전이 누적돼 조직 전체의 방향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물리적 설명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발생 초기 단계에서 좌우 비대칭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분자의 방향성이 세포의 움직임을 바꾸고, 결국 우리 몸의 기본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생명체 설계의 출발점을 새롭게 보여준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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