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연안의 바닷속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오징어가 산다. 이 오징어는 낮에는 해저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밤에는 달빛 아래를 유영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생물은 주변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고도로 정밀한 광학 조절 능력을 이용해, 포식자의 눈을 피해 위장을 수행한다. 핵심은 ‘리플렉틴(reflectin)’이라 불리는 특수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외부 환경에 따라 구조와 광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며, 오징어가 실시간으로 체색과 반사 특성을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빛을 조절하는 오징어의 생존 전략
하와이 단꼬리오징어(Euprymna scolopes)는 밤에 얕은 바다 수면 근처를 유영할 때 위쪽은 어둡고 아래쪽은 밝게 유지해, 위장 효과를 극대화한다. 특히 복부에서 발산되는 빛은 달빛 아래에서 생길 수 있는 그림자를 지워, 아래쪽에서 접근하는 포식자의 눈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 위장 능력의 중심에는 복부에 위치한 특수한 반사 기관이 있다. 이 구조는 주변 빛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하고, 반사 패턴을 조절함으로써 오징어의 형체를 배경에 녹아들게 한다.

하와이 단꼬리오징어(Euprymna scolopes)는 복부에 있는 특수 반사 기관으로 달빛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제거한다. 이 기관은 내부 공생 박테리아의 발광과 반사 세포의 조합을 통해, 아래쪽에서 자신을 감추는 ‘카운터 일루미네이션(counter-illumination)’ 전략을 수행한다. [자료=Science Wave]
199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의 생물학자 마거릿 맥폴-응아이(Margaret McFall-Ngai) 교수 연구팀은 이 반사 기관 내부에서 발광 박테리아 Vibrio fischeri가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결과는 1991년 Science를 포함한 주요 생물학 저널에 연이어 발표되었고, 이후 이 기관이 단순한 발광 구조가 아니라, 정교한 빛 조절 시스템임이 드러났다. 특히 이 반사 구조의 작동에는 내부에 존재하는 특수 단백질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뒤이은 연구에서 규명되었다.
빛을 조절하는 단백질, 리플렉틴의 발견
오징어의 반사 조직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1990년대 젤 전기영동(gel electrophoresis) 분석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단백질 띠 하나를 발견했다. 이 단백질은 기존에 알려진 것들과는 뚜렷이 다른 아미노산 배열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항체 분석을 통해 오직 오징어의 반사 세포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이 단백질이 오징어의 위장 능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고 ‘리플렉틴(reflect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플렉틴은 일반적인 단백질과 달리 고정된 3차원 구조를 가지지 않는 ‘무질서 단백질(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이다. 외부 환경, 특히 pH나 염도의 변화에 따라 분자 구조가 유동적으로 변형되고, 이에 따라 반사되는 빛의 파장과 세기도 달라진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오징어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피부색과 광택을 조절해 위장을 실행할 수 있다. 단순 색 변화가 아닌, 광학적 반사 조절이라는 점에서 이 단백질은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리플렉틴(reflectin)은 오징어의 반사 조직에서만 발견되는 특수 단백질로, pH나 염도 변화에 따라 구조를 바꾸며 반사되는 빛의 파장을 조절한다. 이 단백질 덕분에 오징어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체색을 바꾸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자료=Science Wave]
리플렉틴, 위장·광학 기술로 확장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C Irvine)의 생체공학자 알론 고로데츠키(Alon Gorodetsky) 연구팀은 리플렉틴 단백질의 기술적 활용 가능성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이들은 인간 세포에 리플렉틴 유전자를 삽입하고, 배양 환경의 염도를 조절한 결과, 세포 표면의 반사 특성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는 리플렉틴이 외부 조건에 따라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며, 반사되는 빛의 양과 파장을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성질은 리플렉틴을 적외선 반사율을 조절하는 기능성 소재로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군사용 위장복, 열 감지 회피용 코팅, 환경 반응형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기대된다.
고로데츠키 연구팀은 “리플렉틴은 생물이 구현하는 정밀한 광 조절 기능을 인공 시스템으로 이전할 수 있는 드문 사례”라며, “차세대 광학 소재 개발의 새로운 경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