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반구형 티타늄 조각을 360도 용접해 만든 지름 55 cm, 용량 130 ℓ의 은빛 구가 실험실 중앙에 자리한다. 상단에는 직경 25 mm 가량의 파이프 노즐이 솟아 있고, 몸체에는 용접 열 이력을 표시한 파란·빨간 마킹이 촘촘하다. 표면은 반광택을 띠며 세로 방향으로 미세한 적층 결이 남아 있다. 금속 지그에 고정된 이 구형 압력용기는 액체질소(−196 °C)로 냉각된 상태에서 330 bar까지 압력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시험을 통과했다. 소재는 Ti‑6Al‑4V 합금, 제조 방식은 금속 3D 프린팅(와이어·레이저 적층)이다.
이 금속 구체는 우주로 갈 예정이다. 우주발사체의 연료 시스템에 탑재될 수 있는, 극저온·고압 환경을 견디는 차세대 저장 탱크다. 액체 헬륨이나 질소처럼 온도와 압력 변화에 민감한 가스를 안정적으로 보관·공급하는 용도로 설계됐으며, 기존 주조·용접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정밀성과 경량성을 3D 프린팅으로 구현한 점에서 기술적 도약을 의미한다.
왜 3D 프린팅인가
| 비교 항목 | 기존 단조·용접 | 3D 프린팅 구형 탱크 |
|---|---|---|
| 제작 납기 | 6–8 개월(단조 블록 수급) | 2–3 주(와이어 확보 시) |
| 형상 제약 | 2–3개 용접선 필수 | 곡면 일체형, 용접선 최소 |
| 무게(동일 용적) | 기준 100 % | 60–65 % |
| 품질 관리 | 제조 후 검사 중심 | 공정 중 센서 피드백 + 후검사 |
적층제조는 소재 낭비를 줄이고, 곡면·복합 곡률 구조를 지지대 없이 구현할 수 있다. 이번 시제품은 적층 후 열처리와 정밀 가공, 최종 전자빔(EB) 용접으로 완성됐다. 실시간 열변형 제어와 층별 용융풀 모니터링으로 변형 오차 ≤1 mm, 기공도 <0.2 %를 달성했다.
어디에 쓰이나
| 적용 시스템 | 구체 용도 | 기대 효과 |
| 발사체 2·3단 | 헬륨 가압탱크, 질소 프리프레스 | 탱크 질량↓ → 페이로드↑ |
| 위성 전기추진 | 크립톤·제논 저장 | 장기 궤도 운용 신뢰성 ↑ |
| 달 착륙선·거주 모듈 | 산소·메탄 저장 | 현지 제조(ISM) 가능성 |
| 추진제 지상 시험 | 극저온 버퍼 탱크 | 반복 동결‑해동 내구 입증 |
다음 관문은 반복 가압·열충격
내압과 극저온 성능을 입증한 이번 시제품은 향후 반복 피로 시험과 열충격 시험을 통해 본격적인 우주용 부품 인증 절차에 들어간다. 항공우주연구원은 운용 압력(200–250 bar)에서 1만 회 이상 반복해 압력을 가하는 피로 시험과, 영하 196도와 상온(+20 °C)을 오가는 열충격 사이클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시험 결과는 미국 재료시험표준협회(ASTM)의 우주용 적층제조 금속 기준(F3302‑23)에 따라 정량적으로 평가되며, 국내 발사체용 고압탱크의 적층제조 공정 데이터를 공식화하는 데 활용된다.
이협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극저온과 고압이라는 실제 운용 조건에서 대형 적층 구조물이 설계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우주 발사체에 사용되는 저장 탱크는 영하 200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견디는 연성과 동시에 수백 기압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구조적 신뢰성이 요구된다. 특히 기존 단조·용접 방식으로는 구조상 제약이 많고, 용접 부위의 미세 결함이 누적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반면 금속 3D 프린팅 방식은 응력 분산을 고려한 자유로운 구조 설계가 가능해, 극한 조건에서도 균일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김현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발사체에서 1kg의 감량은 10kg의 페이로드 확보로 이어진다”며, 이번 금속 적층 탱크가 “구조 최적화와 내압 신뢰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이 발언은 로켓 방정식이 제시하는 구조 질량과 속도 변화(Δv) 간의 지수적 관계에 기반한다. 구조 질량을 줄이면 적은 연료로도 동일한 궤도 진입 속도를 얻을 수 있어, 실무 계산에서는 ‘1kg 경량화 = 10kg 탑재 여유’라는 경험적 수치가 사용된다. 결국 이번 적층제조 탱크는 발사체의 전체 효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적 요소로 작용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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