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게, 밝게, 맑게…피아노, 연주자 따라 같은 건반 다른 소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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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같은 건반을 눌렀는데도 어떤 연주는 더 밝고 경쾌하게, 또 다른 연주는 무겁고 깊게 들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을 두드리는 단순한 원리로 작동하지만, 소리의 색깔은 단순히 기계적 구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바로 피아니스트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이다. 음악가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손끝으로 음색을 만든다”는 믿음이 과학적 데이터로 입증된 것이다.

미세 동작이 만드는 음색의 조건

이번 연구는 피아노 음색을 결정짓는 요인이 단순히 건반을 세게 누르거나 빠르게 치는 수준을 넘어, 연주 과정의 특정 순간과 세밀한 동작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연주자의 손가락 동작과 건반 움직임이 동시에 기록되는 모습. 오른쪽 그래프는 건반 하강 속도와 가속도를 시각화한 결과로, 음색 차이를 만들어내는 미세한 제어 과정을 보여준다.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5)]

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과 독일의 협력으로 진행된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핵심 장비는 초정밀 비접촉 센서 시스템 ‘HackKey’였다. 이 장치는 피아노 88개 건반 각각의 움직임을 1밀리초 단위의 시간 해상도와 0.01밀리미터 수준의 공간 해상도로 기록할 수 있어, 인간의 눈이나 귀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섬세한 차이까지 수치로 환원해낸다.

실험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18명의 전문 피아니스트가 하농(Hanon) 연습곡을 연주하면서 ‘가볍게–무겁게’, ‘맑게–흐리게’, ‘밝게–어둡게’라는 세 가지 음색 의도를 담도록 요청받았다. 그 연주를 20명의 피아니스트와 20명의 비전공자에게 들려주자, 두 집단 모두 의도된 차이를 신뢰도 있게 구분했다.

특히 피아니스트들은 비전공자보다 훨씬 예민하게 음색 차이를 감지했다. 이는 연주자가 만든 변화가 단순한 주관적 착각이 아니라 청중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차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음색 변화를 좌우한 것은 모든 동작이 아니라 특정 지점의 제어였다. 건반이 내려가는 속도와 가속도, 여러 건반 간의 수 밀리초 단위의 시간 차이, 그리고 양손 움직임의 동기화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중요한 것은 건반이 현을 치기 직전, 즉 해머 메커니즘이 건반과 분리되는 ‘탈출점(acceleration at escapement)’에서의 가속도였다. 이 순간의 차이는 해머가 현을 타격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청중이 느끼는 밝기나 무게감 같은 음색 특성으로 연결됐다.

피아노 건반 내부에 장착된 초정밀 비접촉 센서 시스템 ‘HackKey’. 88개 건반의 움직임을 1밀리초, 0.01밀리미터 단위로 측정해 연주자의 미세한 동작을 데이터로 기록할 수 있다.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5)]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된 단음 실험에서는 한 피아니스트가 동일한 음을 치되 탈출점 직전의 가속도만 달리했고, 청중은 이 미세한 차이를 일관되게 구분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피아노의 음색이 단순히 음량이나 페달 같은 거시적 요소가 아니라, 타건 과정의 특정 순간과 정밀한 동작 제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밝혔다.

연주·교육 현장에 도움 가능성

이번 결과는 음악 교육에도 활용된다. 추상적인 지시어인 ‘더 밝게’나 ‘더 무겁게’는 건반 하강 속도, 탈출점 가속도, 양손의 동기화 같은 구체적 동작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연습 방법을 단순한 박자 맞추기에서 미시 타이밍과 어택 제어 중심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고해상도 동작 데이터는 연주자의 표현력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연구와 평가에도 의미가 있다. 제한된 조건에서 얻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이번 연구는 손끝의 움직임이 피아노 음색이라는 예술적 특성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과학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Kaori Kuromiya et al, Motor origins of timbre in piano performanc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5). DOI: 10.1073/pnas.2425073122

자료: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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