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신석기 시대는 인류가 수렵을 멈추고 정착해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평화의 시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스페인 북부 아타푸에르카 산맥의 한 동굴에서 출토된 약 5,700년 전 유골은 이러한 이미지에 균열을 낸다.
정교하게 벗겨진 피부 흔적, 골수 채취를 위한 절개, 삶은 것으로 보이는 열 손상, 그리고 이빨 자국까지. 이 유골들은 단순히 땅을 일구던 농부가 아닌, 타인의 시신을 해체하고 조리해 먹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체와 조리의 흔적…단발성 아닌 반복된 식인 정황
카탈루냐 고인류생태사회진화연구소(IPHES)의 프란세스크 마르지네다스 박사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서, 엘 미라도르 동굴에서 발굴된 후기 신석기 유골 600여 점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성인, 청소년, 아동을 포함한 11명의 개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거의 모든 뼈에서 절단, 해체, 탈피, 이빨 자국 등의 손상이 관찰됐다.

소규모 가족 또는 씨족 단위로 모여 식량 채집, 도구 제작, 직조 등 일상 활동을 수행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Midjourney 생성 이미지]
총 69점의 뼈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살을 벗기고 자른 흔적이 뚜렷했으며, 일부는 골수 추출을 위해 강하게 깨진 채였다. 둥글게 마모된 가장자리와 반투명한 표면이 나타난 뼈는 열처리를 거쳤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흔적들이 단순한 시신 훼손이 아니라, 실제 조리와 섭취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일부 유해는 며칠에 걸쳐 소비됐을 수 있으며, 식량 부족이나 장례 의식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반복적인 식인 행위로 해석된다.

살점 제거와 조리를 위한 정교한 해체 작업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단순한 훼손이 아닌 식인 행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진=Marginedas et al., Scientific Reports, 2024]
집단 학살 가능성과 신석기 폭력의 실체
분석된 유골들은 하나의 가족 또는 대가족 구성원으로 보이며, 연구팀은 이들이 외부 집단의 공격을 받아 집단적으로 희생된 뒤 식인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해석은 프랑스, 독일, 이베리아반도 등에서 확인된 동시기 신석기 집단 학살 사례들과도 맥을 같이한다. 공동체 간 충돌과 폭력은 일부 사례가 아닌, 보다 널리 퍼진 현상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골이 출토된 엘 미라도르 동굴은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장소다. 이곳에서는 과거 청동기 시대의 식인 흔적, 의식용으로 가공된 두개골, 제의적 매장 유물 등이 발견된 바 있으며, 이번 발견은 해당 유적이 장기간에 걸쳐 인간 사회의 갈등과 의례가 교차하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연구를 이끈 마르지네다스 박사는 “신석기 사회는 단순한 농경과 정착의 시기가 아니었다”며 “자원과 생존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극단적인 행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신석기 시대 사회가 단순히 정착과 농경 중심의 평화로운 시기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 간 폭력과 그로 인한 식인 행위가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당시 사회 구조와 집단 간 관계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시신 해체와 선별적 처리가 있었던 정황으로, 공격 후 식인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사진=Marginedas et al., Scientific Reports, 2024]
신석기 후기와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며 사회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식인 문화는 점차 자취를 감췄을 가능성이 크다.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고 노동력이 중요한 자원이 되면서 인명 손실을 감수하는 식인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워졌고, 공동체 내 갈등 역시 중앙 권력이나 규범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기근이나 종교적 이유로 식인이 간헐적으로 나타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수렴해 갔다. 대신, 커진 집단 규모와 복잡한 사회 구조는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충돌과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번 발견은 그런 전환이 시작되기 전, 인간 공동체 내부의 폭력과 식인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Palmira Saladié et al, Evidence of neolithic cannibalism among farming communities at El Mirador cave, Sierra de Atapuerca, Spain, Scientific Reports (2025). DOI: 10.1038/s41598-025-1026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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