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기반 신약 개발 기술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껏 신약은 반드시 제약회사 실험실에서만 제조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 상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식물은 햇빛과 공기 중 이산화탄소만으로 약이 될 수 있는 복합 화합물을 생산하는 천쳔 화학 공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존 이네스 센터 연구진은 AI·유전체 데이터 분석·생명공학을 결합해 식물 안에 감춰져 있던 식물 기반 신약 개발 자원을 대량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시연했다. 이 연구는 『Nature Chemical Biology』에 발표되었으며, 식물 게놈 속 ‘화학 암흑물질(dark matter)’을 본격적으로 탐색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식물 속 숨겨진 약물 합성 효소(OSC)를 찾아내는 연구 전체 과정 개념도 [사진=Nature Chemical Biology (2025), DOI:10.1038/s41589-025-02034-8]
AI로 밝힌 식물에 숨어있던 신약 제조 기술
식물이 만드는 ‘트라이테르펜(triterpenes)’은 해충과 병원균을 방어하고, 뿌리 미생물군을 조절하며, 작물 품질에도 영햐을 미친다. 백신 보조제로 쓰이는 QS-21(비누나무), 항염 성분 에스신(마로니에), 벌 친화적 살충 성분(님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즉, 자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약 혁신을 위한 설계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껏 이 물질을 만들어는 효소, OSC(oxidosqualene cyclases)에 대해 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약물 산업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이 효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약리성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팀은 약 400종 식물의 게놈 데이터를 AI로 분석하고, 1,400개의 OSC 유전자를 추적했다. 이 중 20개의 유전자를 선별해 기능을 검증했는데, 결과는 놀라왔다. 단 20개만 시험했을 뿐인데, 거의 모든 유전자가 새로운 약물 후보 화학물질을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스티븐슨 박사는 익숙한 화학 구조가 아닌, 한 번도 존재를 몰랐던 화학 구조가 연속으로 발견됐다면서 식물 기반 신약 개발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한, 연구팀은 야생 식물을 단 한 번도 채집하지 않았다. 게놈 데이터 속 유전자 정보를 꺼내 고수분류 담배 기반 발현 시스템에 넣어 효소를 작동시켰다. 즉, 컴퓨터 속 유전자를 불러내어 식물 안에서 공장처럼 신약 후보를 찍어낸 것이다. 이 방식은 희귀 식물 채집을 직접 할 필요가 없으며, 둘째, 생산 속도가 빠르고, 셋째, 산업적 대량생산 가능성까지 확보한 기술로서, 상당히 효율적인 연구방식이다.
45만 종 식물, 신약 패권 가를 열쇠
현재 확보된 식물 게놈은 겨우 1,800종 수준이지만, 지구에는 45만 종 이상의 식물이 존재한다. 존재조차 모르는 미지의 화학 기술이 아직 수십만 종 안에 가려져 있다는 의미로, 그 안에 숨겨진 생화학 기술은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오스본 교수는 지금까지 확인한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며, 이 기술이 본격화되면, 희귀 질환 치료제, 항생제 대체 후보, 친환경 농업 및 산업 화학 모두 새 경쟁 구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윤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Stephenson M. J. et al., Large-scale mining of plant genomes unlocks the diversity of oxidosqualene cyclases, Nature Chemical Biology (2025). DOI:10.1038/s41589-025-02034-8
자료: Biochemistry 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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