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아폴로 17호 우주인들은 달 표면에서 작은 암석 하나를 채취했다. ‘샘플 76535’라 불리는 이 암석은 지하 약 50km 깊은 곳에서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강한 충격 흔적이 거의 없어, 어떻게 표면으로 올라왔는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미국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 에반 뵈네스 연구팀은 최신 충돌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달 앞면의 거대 충돌 구조인 세레니타티스 분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깊은 지각에 있던 암석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표면 가까이 이동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Geophysical Research Letters(2025)에 발표됐다.

이 분석은 세레니타티스 분지의 형성 시점을 약 42억 5천만 년 전으로 끌어올린다. 기존 추정보다 약 3억 년 이른 시기다. 달의 충돌 연대가 수정되면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내부 행성들의 충돌사 역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지구는 초기 표면 기록이 판구조 운동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달의 흔적은 지구 초기 환경을 추정하는 핵심 자료로 쓰인다.
단순한 과정으로 풀린 모순
샘플 76535는 화학 조성과 조직이 깊은 달 지각에서 형성됐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제는 그 기원과 이동 경로였다. 기존 학설에 따르면, 이 암석은 달 뒷면의 남극-에이트켄 분지에서 형성된 거대 충돌에 의해 지표로 끌려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 가설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분지에서 아폴로 17호 착륙지까지 암석이 이동하려면 최소 두 차례의 충돌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특유의 충격 변형 흔적이 남아야 한다. 그러나 샘플 76535는 놀라울 정도로 손상 흔적이 적어 설명에 모순이 따랐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우회 가설을 걷어내고 더 단순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최신 고해상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세레니타티스 분지 형성 후반부 ‘붕괴 단계(collapse stage)’에서 심부 암석이 충격 손상 없이 수 km 깊이까지 부드럽게 끌어올려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거대한 충돌은 표면 파괴에 그치지 않고, 분지가 무너지며 내부 물질을 위로 이동시키는 힘을 동반한다. 샘플 76535가 바로 이 과정에서 지표 가까이 노출됐고, 수십억 년 후 아폴로 17호 우주인들에 의해 채취된 것이다.
연구를 이끈 에반 뵈네스는 “대규모 충돌은 단순한 파괴 사건이 아니다. 조건에 따라 깊은 지각의 암석을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끌어올리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일 암석이 달의 충돌 연대를 다시 쓰게 만든 배경이다.
이번 결과는 아폴로 프로그램의 과학적 유산이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준다. 반세기 전 수집된 작은 암석이 최신 시뮬레이션 기법과 결합해 달 초기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다른 충돌 분지에서 유사한 심부 암석을 확보한다면 달의 진화 과정뿐 아니라 지구와 태양계 형성 초기의 격렬한 충돌 환경까지 더 명확히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Evan Bjonnes et al, Evidence for an Early Formation of Serenitatis Basin at 4.25 Ga Shifts Lunar Chronology,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2025). DOI: 10.1029/2025gl116654
자료: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 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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