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거미집 ‘거미 메가시티’, 유럽서 발견

Photo of author

By 사이언스웨이브

유럽 남부의 황화수소 동굴에서 지금까지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거미집 구조가 발견됐다. 알바니아–그리스 국경 인근 황화(Sulfur) 동굴에서 확인된 이 집단 거미줄은 100제곱미터 이상을 덮고 있으며, 두 종의 거미가 함께 만든 이례적인 공동 거주지로 확인됐다.

두 종이 함께 만든 100㎡ 규모의 대형 집단

체코 동굴학회 연구진은 2022년 지하 생물상 조사 과정에서 동굴 입구 벽면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거미줄을 발견했다. DNA 분석과 형태학적 검사를 통해 이곳에 테제나리아 도메스티카 약 6만 9천 마리와 프리네리곤 바간스 약 4만 2천 마리가 함께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 종 모두 단독 생활을 하는 거미로 알려져 있어, 이처럼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는 매우 드문 것으로 평가된다. 관련 연구는 학술지 Subterranean Biology에 실렸다.

알바니아–그리스 국경 황화 동굴에서 발견된 대규모 집단 거미줄 구조.
거미줄이 동굴 벽면 전체를 층층이 뒤덮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단독 생활을 하는 두 거미 종이 이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관찰됐다. 탐사 장비를 갖춘 동굴 연구자가 규모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Subterranean Biology(2025), Marek Audy]

거미 집단의 규모는 무작위 구역에서 깔때기형 거미줄 밀도를 측정한 뒤 전체 면적으로 환산해 추정했다. 연구진이 계산한 전체 면적은 약 106제곱미터로, 벽면 전체가 하나의 거미 군집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빛 없는 독성 환경에서도 유지되는 먹이사슬

황화 동굴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고, 공기 중에는 황화수소가 높게 포함된 독성 환경이다. 일반적인 동굴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이지만, 이곳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별도의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연구진은 거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정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거미들은 바깥에서 날아드는 곤충을 거의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동굴 내부에서 스스로 유지되는 먹이사슬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먹이사슬의 출발점은 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미생물이다. 동굴 속 황화수소와 산소가 반응하면서 미생물이 빠르게 증식하고, 이 미생물을 먹이로 삼아 작은 깔다구류(비흡혈성 깔다구)가 대량 발생한다.

동굴 천장 가까이 형성된 다층 거미줄과 그 아래 떠다니는 깔다구류.
황 기반 미생물이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고, 이를 먹는 깔다구류가 대량 발생하면서 거대한 거미 집단이 유지되는 동굴 생태 구조를 보여준다.
[사진=Subterranean Biology(2025)]

깔다구류는 어둡고 바람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계속 떠다니기 때문에, 벽면을 뒤덮은 거미줄에 쉽게 걸린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거미들은 꾸준한 먹이를 확보할 수 있고, 거대한 집단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즉, 이 동굴의 거미 메가시티는 햇빛이 없는 환경에서도 황산화 미생물 → 깔다구류 → 거미로 이어지는 독립된 먹이사슬이 강력하게 작동한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동굴 환경 적응이 만든 유전적 차이

연구진은 동굴 안의 개체와 동굴 밖에 서식하는 동일 종 개체를 비교해 유전적 구분도 확인했다. 동굴 집단은 외부 개체와 뚜렷한 유전적 차이를 보였으며, 이는 환경 적응 과정에서 점차 고립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풍부한 먹이 공급과 유전적 분리가 결합되면서, 원래는 단독 생활을 하던 두 종이 조건적으로 집단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단독 생활 종이 지하 극한 환경에서 대규모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다. 황 기반 먹이사슬, 유전적 분화, 행동 변화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동시에 관찰되며, 지하 생태 연구와 거미 행동 진화 연구에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István Urák et al, An extraordinary colonial spider community in Sulfur Cave (Albania/Greece) sustained by chemoautotrophy, Subterranean Biology (2025). DOI: 10.3897/subtbiol.53.162344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