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백세를 넘기지 못하고 떠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최근 스페인 연구진이 세계 최고령 기록을 남긴 여성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Maria Branyas Morera)의 유전자와 생활 습관을 분석한 결과는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스페인으로 건너간 소녀, 117세까지 산 여인
모레라는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8살 무렵,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정착했다.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스페인 독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20세기와 21세기의 굵직한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113세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회복했고, 117세 168일을 살고 2023년에 세상을 떠나며 세계 최고령자의 기록을 남겼다.
연구진이 본 ‘짧은 텔로미어’의 역설
그녀의 특별한 장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대학교와 호세프 카레라스 백혈병 연구소의 마넬 에스텔러 박사팀은 모레라가 사망하기 1년 전 채취해 둔 혈액, 타액, 소변, 대변 샘플을 3년간 분석했다. 연구는 유전체, 전사체, 단백질체, 대사체, 장내 미생물까지 총체적으로 다뤄졌고, 결과는 2025년 9월 의학저널 셀 리포츠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발표됐다.
분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텔로미어였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마개 같은 구조인데, 나이가 들수록 짧아진다. 짧은 텔로미어는 흔히 ‘노화의 징후’로 불리지만, 모레라의 경우 이 짧음이 오히려 암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 것으로 보였다. 세포가 무한히 분열하지 못하도록 막아, 종양 형성을 차단하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된 것이다.
게다가 DNA 검사에서는 뇌와 심장을 퇴행성 질환으로부터 지켜주는 드문 유전자 변이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그녀의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보다 10~15년 젊었다고 평가했다.
생활 습관도 장수의 중요 조건
유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모레라는 담배와 술을 멀리했고, 과체중이 아니었다. 매일 플레인 요거트 3개를 챙겨 먹었는데, 실제로 그녀의 장내에는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풍부했다. 염증 수치가 낮아 당뇨와 심혈관 질환 위험도 거의 없었다.
또한 성격은 사교적이었다. 90대까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고, SNS에서 자신을 ‘수퍼 카탈루냐 할머니’라고 부르며 대중과 소통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족과 친구와 활발히 교류하며 고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건강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연구를 이끈 에스텔러 박사는 “모레라는 부모로부터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생활 습관에서도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며 “극단적 장수의 열쇠는 유전과 행동이 서로 다른 비율로 섞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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