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블랙홀이 서로를 향해 나선형으로 회전하다가 충돌해 하나로 합쳐질 때, 시공간은 미세하게 뒤틀린다. 이때 생기는 파동이 중력파다. 2015년 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가 처음으로 이 신호를 감지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과학자들은 이미 컴퓨터 속에서 그 파형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블랙홀 병합과 같은 극한 천체 현상을 수치상대론으로 재현하는 국제 연구 협력체 SXS(Simulating eXtreme Spacetimes)가 있다.
SXS는 최근 블랙홀 충돌 시뮬레이션 카탈로그 3판(SXS Catalog of Binary Black Hole Simulations, version 3)을 발표했다. 이번 업데이트에는 총 3,756개의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포함돼 있으며, 2019년 2판 이후 6년 만의 대규모 확장이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고전 및 양자 중력(Classical and Quantum Gravity)에 게재됐다.
중력파, 이론이 관측을 이끄는 시대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병합할 때 생기는 시공간의 잔물결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LIGO와 비르고(Virgo), 일본의 가그라(KAGRA) 같은 초정밀 간섭계가 그 미세한 흔들림을 포착한다. 관측가들은 이 데이터를 분석해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고, 이론가들은 반대로 특정 천체 사건이 어떤 파형을 만들어낼지를 계산한다.
SXS는 이론적 계산의 최전선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을 수치 계산 형태로 변환해, 블랙홀의 초기 조건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한다. 코넬대 나사 펠로우 키프 미트먼(Keefe Mitman)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파동 형태로 표현하면, 초기 상태에서 시공간의 변화를 유일하게 계산할 수 있다”며 “해상도를 높일수록 실제 해답에 근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SXS와 LIGO는 이론과 관측을 교차 검증하며 서로를 보완한다. LIGO가 새로운 중력파를 감지하면, 연구자들은 SXS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한 파형을 찾아 사건의 성격을 분석한다. 일치하지 않을 경우 매개변수를 조정해 새로운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이론과 관측은 서로를 좁혀가며 점점 더 정밀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SXS Collaboration / Classical and Quantum Gravity]
우주가 남긴 흔적, 중력파 메모리
이번 3판의 가장 큰 진전은 중력파 메모리(gravitational-wave memory) 효과가 포함된 것이다. 일반적인 파동은 사라지면 매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만, 중력파는 다르다. 파동이 지나간 뒤에도 시공간에는 미세한 변형이 남는다. 다시 말해, 우주는 그 사건의 흔적을 물리적으로 기억한다.
SXS는 이 효과를 수학적으로 구현해 블랙홀 병합 전후의 시공간 변화를 정밀하게 재현했다. 코넬대 이론천체물리학자 사울 테우콜스키(Saul Teukolsky) 교수는 “SXS 카탈로그는 전 세계 중력파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준 자료이며, LIGO의 분석 모델 또한 이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정된다”고 설명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블랙홀 병합의 수치 계산은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시뮬레이션이 오히려 관측을 앞서가고 있다. LIGO와 비르고, 가그라뿐 아니라, 곧 가동될 우주 간섭계 LISA와 DECIGO 역시 SXS의 데이터를 토대로 탐지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미트먼 박사는 “예전에는 이론이 관측을 따라갔지만, 이제는 관측이 이론을 검증하는 단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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