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르세유의 항구 아래, 집게팔을 단 거대한 로봇이 천천히 움직인다. 오락실의 인형뽑기 기계를 바다 속으로 옮겨 놓은 듯한 광경이다. 이번엔 인형 대신 바다 밑에 가라앉은 폐기물이 ‘상품’이다. 이 자율 수중 로봇은 인간이 버린 해저 쓰레기를 스스로 찾아내 집어 올리며, 새로운 해양 정화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해저 폐기물 수거에 나선 유럽연합 로봇 프로젝트
우리가 버린 쓰레기 중 상당수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괜찮다’는 심리 아래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잔해는 해양 생태계와 어업,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우리가 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 중 일부는 강과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물에 젖거나 미생물이 달라붙으면서 무게가 늘어나, 결국 해저로 가라앉는다. 현재 전 세계 해양 쓰레기의 약 70퍼센트가 해저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쌓인 폐기물은 단순한 시각적 오염을 넘어 생태계의 기반을 뒤흔든다. 해저 쓰레기는 바닥 생물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먹이 사슬을 교란하며, 미세플라스틱 형태로 퇴적층 속에 축적된다. 특히 어류와 갑각류가 폐기물에 걸려 죽거나, 플라스틱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체내에 축적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SEACLEAR 프로젝트(SEarch, identificAtion and Collection of marine Litter with Autonomous Robots)가 시작됐다. ‘탐색·식별·수거’를 모두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해양 청소 로봇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독일 프라운호퍼 CML,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대학,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 공대, 독일 뮌헨공대(TUM)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에 마르세유에서 시연된 로봇은 뮌헨공대가 개발했다.

SEACLEAR 2, 해저 자율 수거 로봇의 첫 현장 시연
‘SEACLEAR 2’로 불리는 이 로봇은 네 개의 집게를 장착해 최대 4,000뉴턴의 힘으로 250kg에 달하는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센서가 압력을 자동 조절해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이 손상되지 않도록 제어한다. 8개의 프로펠러로 자체 추진하지만, 전력과 통신은 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케이블은 전원 공급과 데이터 전송, 그리고 무거운 쓰레기를 해상 지원선으로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맡는다.
해저 쓰레기의 탐지와 인식에는 음파탐지기(소나), 비전 카메라, 그리고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기술이 함께 활용된다. 우선 로봇은 소나를 이용해 주변 지형의 윤곽을 파악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잠재적인 폐기물의 위치를 추정한다. 이어 비전 카메라가 해저 바닥을 촬영해 실제 형태를 식별하며, AI는 이 영상에서 쓰레기와 자연 물체를 구분한다.

[사진=TUM/SEACLEAR 프로젝트]
AI 학습을 위해 연구진은 약 7,000장의 수중 이미지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 데이터에는 폐어망, 자전거, 타이어, 자동차 좌석 등 다양한 오브젝트가 포함되며, 이를 3차원(3D) 모델로 변환해 인공지능이 물체의 크기, 형태, 방향을 정밀하게 인식하도록 학습시켰다. 로봇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집게(gripper)의 각도와 힘을 조정해 최적의 위치에서 물체를 들어 올린다.
SEACLEAR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 과정을 완전 자율화하는 것이다. 무인 수상선이 초음파를 이용해 해저의 기본 지도를 작성하면, 탐색 로봇이 그 구역을 세밀하게 스캔해 쓰레기의 분포와 종류를 파악한다. 이후 이 데이터는 수거 로봇으로 전송되어, 그리퍼 로봇이 현장에 투입된다. 로봇은 AI가 제시한 좌표를 따라 이동하며 물체를 수거하고, 일정 무게 이상인 폐기물은 케이블을 통해 해상 지원선의 크레인으로 인양된다. 수면 위에서는 별도의 자율 보트가 수거된 폐기물을 모아 운반하거나 임시 저장소로 옮긴다.
이처럼 탐색, 분석, 수거, 운반의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완성되면,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로봇 군집이 해저 청소를 수행하는 완전 자동화 체계가 구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자료: 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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