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비행하는 박쥐. 그 특별한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연구진은 탄자니아 해안의 라탐섬에서 과일박쥐의 비행 중 뇌 신호를 단일 뉴런 수준으로 기록했다. 그 결과, 박쥐의 뇌에는 빛이나 자기장 없이도 방향을 계산하는 이른바 뇌 속 나침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나침반은 특정 방향을 향할 때 활성화되는 ‘방향세포(head-direction cell)’로 구성되어 있으며, 섬의 어디에서나 같은 방향 정보를 유지했다. 연구진은 박쥐가 초음파만이 아니라 지형을 학습하고 이를 내부 좌표계로 전환해 비행 방향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즉, 박쥐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뇌가 만든 지도를 따라 비행하는 동물인 셈이다.

야생에서 드러난 뇌의 방향 인식
연구진은 초소형 신경기록 장치를 박쥐의 두개골에 이식해, 자연 비행 중 발생하는 뇌의 전기 신호를 초단위로 기록했다. 장치는 GPS가 내장돼 박쥐의 위치와 방향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었다. 이 데이터는 섬의 전체 비행 궤적과 특정 방향을 향할 때 활성화되는 뉴런의 패턴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데 사용됐다.
분석 결과, 박쥐가 북쪽이나 남쪽 등 특정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일정한 신경세포 집단이 활성화되었고, 섬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도 그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즉, 뇌 속 ‘방향세포(head-direction cell)’는 국소적인 기준이 아니라 섬 전체에 걸쳐 일관된 공간 좌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박쥐의 뇌가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전역적 나침반(global compass)’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흥미로운 변화는 실험 초기에 나타났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세포의 반응이 일정하지 않았으나, 박쥐가 섬의 지형과 장애물, 절벽의 위치를 익히기 시작한 뒤부터 방향세포의 신호가 급격히 안정됐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단순한 자기장 의존이 아닌, 시각적 지형 학습을 통한 뇌의 자가 보정 과정으로 해석했다.
달이 보이지 않거나 구름이 하늘을 덮은 밤에도 뉴런의 활성 패턴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비행 속도나 고도 변화 역시 방향 감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즉, 박쥐의 뇌는 외부 단서를 결합해 주변 환경을 ‘내부 지도’로 변환하고, 그 좌표를 기준으로 자신이 향하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유류 뇌의 보편적 지도
이번 연구는 포유류의 뇌가 외부 기준 없이도 자체 좌표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향세포는 포유류의 공간 인지 구조를 구성하는 핵심 신경 회로로, 인간의 뇌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세포가 손상될 경우 길을 잃거나 공간 감각을 잃는 현상이 나타나며,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박쥐 연구는 인간의 방향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반영한다.
연구를 이끈 나훔 울라노브스키 교수는 “실험실에서는 완전히 재현할 수 없는 복잡한 자연 환경이야말로 뇌의 본래 작동 방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뇌과학은 통제된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실렸으며, 실험실 중심의 뇌과학이 ‘야생의 뇌과학’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연구로 평가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Shaked Palgi et al, Head-direction cells as a neural compass in bats navigating outdoors on a remote oceanic island, Science (2025). DOI: 10.1126/science.adw6202. 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w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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