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섬유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섬유질 물질 가운데 인간이 직접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사실 한 가지 물질이 아니라 여러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의외로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성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물에 녹아서 점액질 상태가 되는 섬유질 물질인 수용성 식이섬유와 물에 녹지 않는 섬유질 성분인 불용성 식이섬유로 분류하며 각각 대표하는 물질이 존재한다.
불용성 식이섬유의 대표는 역시 셀룰로오스(cellulose)다. 셀룰로오스는 식물 세포벽에 주요 구성 성분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유기 화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 정체는 당이다. 이름부터가 세포를 구성하는 당 (cell + ose)이라는 뜻이다. 셀룰로오스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포도당이 결합해 만든 다당류다. 다만 매우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쉽게 떼어낼 수 없고 그래서 우리가 녹말처럼 쉽게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쉽게 소화시킬 수 있었다면 식이섬유가 아닌 탄수화물로 분류했을 것이다.
사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셀룰로오스를 쉽게 분해할 수 없는 것은 생태계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식물에 가장 흔한 성분이기 때문에 동물이 이를 쉽게 소화시킬 수 있다면 살아남을 식물이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동물이 쉽게 소화시킬 수 없어서 현재 식물의 주요 성분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초식동물은 장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식물의 셀룰로오스에서 영양분을 얻는다. 우리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은 셀룰로오스를 분해할 수 없지만, 일부 세균은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장내 미생물도 일부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인간에게 유익한 물질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우선 내 몸 안에 공생 미생물이 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초식동물을 보통 길고 큰 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얻은 영양분을 공생 미생물과 나눠야 하는 만큼 거친 식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분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되새김질까지 해도 상당 부분은 대변으로 나오게 된다. 이런 단점 때문에 육식이나 잡식이라는 대안을 선택한 동물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간 같은 잡식동물에서 공생 미생물이 셀룰로오스를 분해해서 주는 영양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간이 먹는 식물성 음식 가운데 주요 영양소가 되는 건 쉽게 분해할 수 있는 녹말 성분이다. 우리가 먹는 주곡 작물인 쌀이나 밀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식이섬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설령 소화되지 않더라도 셀룰로오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부분은 식이섬유를 많이 먹은 사람에서 대장암 위험도가 낮아지고 비만이나 당뇨 위험도도 낮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소화가 되지 않는 질긴 섬유질 성분이라는 점 때문에 그 가치가 과소평가됐지만, 알고 보니 이렇게 소화되지 않는 특징 덕분에 대변의 양을 유지시키고 장운동을 촉진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물에 녹지 않는 식이섬유는 주변에서 물을 끌어들여 대변이 딱딱 해지지 않게 도와주고 배변을 빨리할 수 있게 해 변비는 물론 치질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대변이 빨리 나오게 도와주는 점이 대장암 예방에도 도움을 주는 요인 중 하나로 생각된다.
물을 끌어들여 부피를 늘리는 작용은 다이어트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포만감을 유지함과 동시에 소장에서는 영양분의 흡수를 방해해 열량 섭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당뇨 환자의 혈당 관리에도 식이섬유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셀룰로오스 같은 식이섬유가 인체에 유익한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는 점인데,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다만 식이섬유를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영양분 섭취가 지나치게 부족해질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의 경우 소화능력 자체가 성인보다 낮은 반면 필요한 영양분은 많아서 과도한 섭취를 피해야 한다. 빈혈이나 저체중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필수 영양소나 열량 섭취를 방해할 수 있는 과도한 섭취를 피해야 한다.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의 하루 식이섬유 섭취 권장량은 25-30g이다. 아주 적은 양이라서 쉽게 섭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물을 제외한 식이섬유만의 무게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과 100g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는 2.4g 정도에 불과하다. 양배추도 100g 당 식이 섬유는 2.5g에 정도다. 우리가 평소에 과일과 채소는 물론 통곡물, 콩, 견과류, 해조류 등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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