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C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다양한 진핵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물질이다. 그래서 우리는 섭취를 통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생명의 공통 조상이 비타민 C를 대사 과정과 항산화 기능을 위해 합성했고, 이 능력이 진화의 흐름 속에서 여러 생물에게 전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흥미롭게도 동물과 식물의 합성 경로가 다른 점으로 보아, 비타민 C 합성 과정은 진핵생물의 역사에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등장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척추동물에서 비타민 C는 포도당을 출발점으로 생산된다. UDP-포도당이 산화되어 UDP-글루쿠론산이 되고, 이어 탈인산화·환원 과정을 거쳐 L-굴로닉산이 된다. 이어 락톤 형성이 일어나 L-굴로노락톤으로 변환되고, 마지막 단계에서 GULO(L-gulonolactone oxidase)가 작용하여 비타민 C가 만들어진다. 다소 복잡한 연쇄 반응의 결과이다.

동물은 포도당을 시작 물질로 사용해 여러 단계를 거쳐 L-굴로노락톤을 만들고, 마지막에 GULO 효소가 작용해 비타민 C가 완성된다.
식물은 만노스에서 출발해 L-갈락토노락톤을 거쳐 GALDH 효소로 비타민 C를 만든다. 인간과 일부 영장류는 GULO 유전자가 기능을 잃어 마지막 단계를 진행하지 못하므로 비타민 C를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과 일부 영장류는 이 마지막 단계를 담당하는 GULO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비타민 C를 스스로 합성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대사 기능이 소실될 때 최종 산물 직전에 끊기는 쪽이 다른 효소들이 다른 경로에서 재활용될 수 있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영장류에서 비타민 C 합성 기능이 사라진 시기는 약 6300만~58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간과 안경원숭이를 포함하는 직비원아목(Haplorrhini)이, 비타민 C 합성 능력을 유지한 곡비원아목(Strepsirrhini)과 갈라진 시점이 바로 이 시기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요한 물질의 합성 능력을 잃어버렸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과일이 풍부한 환경 덕분에 비타민 C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공급이 충분하다면 굳이 합성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 에너지를 아껴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생태적 환경이 변하면 선택 압력도 달라지고, 작은 이점이 누적되면 결국 유전자 수준의 변화까지 이어진다.
비슷한 사례는 동굴에 사는 물고기에서 볼 수 있다. 빛이 없는 환경에서 눈은 생존에 불필요한 기관이다. 유지하는 데만 에너지가 소모될 뿐이다. 수천 년 동안 눈 발달을 줄인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겼고, 결국 눈이 거의 사라진 형태로 진화했다. 환경이 변하면 ‘결핍’이라 보이던 것이 생존 전략이 되기도 한다.
설치류인 기니피그도 마찬가지다. 인간과는 별개의 진화 경로를 거쳤지만, 역시 GULO 유전자에 결함이 있어 비타민 C를 합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괴혈병 증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들이 환경에서 비타민 C를 충분히 얻었음을 시사한다.
진화는 냉정하다. 비타민 C 합성에 필요한 에너지가 아주 적다고 해도, 그 미세한 차이가 수백만 년 동안 누적되면 결국 종 전체가 합성 능력을 잃는다. 자연은 효율을 향해 움직이고, 작은 이득을 놓치지 않는다. 비타민 C의 역사는 그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정교한 사례다.
🍊✨📌 3줄 요약
• 비타민 C는 오래전 생명의 공통 조상에서 합성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생물에 전달된 기본적인 대사 물질이다.
• 인간과 일부 영장류는 GULO 유전자 결함으로 비타민 C를 스스로 합성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풍부한 과일 섭취 환경 덕분에 생존상 불리하지 않았다.
• 환경 적응과 에너지 절약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합성 능력 소실이 자연 선택의 결과로 굳어졌다.
🍋✨📚 참고 문헌
- Duque, P., Vieira, C.P., Bastos, B. et al. The evolution of vitamin C biosynthesis and transport in animals. BMC Ecol Evo 22, 84 (2022). https://doi.org/10.1186/s12862-022-02040-7
- Grădinaru AC, Popa S. Vitamin C: From Self-Sufficiency to Dietary Dependence in the Framework of Its Biological Functions and Medical Implications. Life (Basel). 2025 Feb 5;15(2):238. doi: 10.3390/life15020238.
- Drouin G, Godin JR, Pagé B. The genetics of vitamin C loss in vertebrates. Curr Genomics. 2011;12(5):371-378. doi:10.2174/138920211796429736
- https://en.wikipedia.org/wiki/Vitamin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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