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레밍 진화, 기후변화가 탄생시킨 최신 포유류

극지방 툰드라를 바삐 뛰노는 작은 설치류 노르웨이레밍(Lemmus lemmus). 몸길이 13~15cm의 작고 통통한 이 북극 설치류가 현존하는 포유류 중 가장 최근에 분화한 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발견은 기후 변화가 수만 년 단위의 짧은 시간 안에도 새로운 종의 탄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실증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 다비드 디에스 델 몰리노 교수팀은 1일(현지시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현대 노르웨이레밍과 고대 레밍의 게놈을 비교 분석한 결과, 노르웨이레밍이 약 3만5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극대기(LGM)를 계기로 시베리아레밍(Lemmus sibiricus)에서 분화한 독립된 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만 년 만에 나타난 새로운 포유류 종

노르웨이레밍은 중앙의 검은 띠와 양옆의 노란 털이 강한 대비를 이루는 독특한 외모를 지녔다. 귀와 눈은 작고, 발에는 털이 나 있어 눈밭을 자유롭게 오가며 굴을 파고 생활한다. 겨울에도 동면하지 않고 활발히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 데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또한 북유럽 툰드라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주요 먹잇감으로 기능하는 핵심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전체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북극권에서 수집한 현대 레밍 9개체와 고대 레밍 2개체의 게놈을 고해상도로 분석하고, 진화 계통을 추적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레밍은 진화적으로 극히 최근인 3만5000년 전, 시베리아레밍과 유전적 연계를 끊고 완전히 분리된 종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지질학적으로는 매우 짧은 간격이며, 기후 격변기에 해당한다.

진화가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깬다

포유류의 종 분화는 일반적으로 수십만~수백만 년의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짧은 시간 안에도 기후 변화가 유전적 격리를 촉진하고, 빠른 적응 진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후 변화 → 격리 → 유전적 특성 고정 → 종 분화’라는 전형적인 진화 경로가 현대 생물에서도 여전히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몰리노 교수는 “노르웨이레밍은 털색, 지방대사, 공격성 등에서 시베리아레밍과 구별되는 독특한 유전적 변이를 보이며, 이는 극지 환경의 선택압에 따른 적응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분석된 게놈에는 행동·외형·대사 관련 돌연변이들이 집중돼 있었으며, 이는 툰드라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특화로 해석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분화 이후 두 종 간 유전자 흐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분포 지역이 겹치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상태에서도 유전자 교류가 없었다는 것은, 생식적 장벽이 빠르게 형성됐음을 뜻한다. 연구팀은 이를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유전자 흐름이 완전히 차단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평가했다.

기후 변화가 생물다양성을 바꾼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계통 재구성을 넘어, 오늘날 기후 변화가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기후 변화가 생물의 분화뿐 아니라, 유전적 특성과 생존 전략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에다나 로드 박사는 “이 사례는 향후 기후 시나리오에서 어떤 종이 사라지고, 어떤 종이 새로 생겨날지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Genome analyses suggest recent speciation and postglacial isolation in the Norwegian lemming | P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