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인구 6분의 1 외로워…조기 사망 위험 높여
하루 2,400명, 시간당 100명.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추정 사망자 수다. 이는 교통사고나 전염병보다도 많은 수치다. 우리가 흔히 감정의 영역으로 치부하던 외로움이, 사실은 조용히 건강을 파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요인이라는 경고다.
WHO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과 단절을 ‘글로벌 보건 위기’로 공식 지정하고, 이를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노인의 3분의 1, 청소년의 4분의 1이 실질적인 사회적 접촉 없이 살아가고 있다. WHO는 외로움을 “기대하는 인간관계와 실제 관계 간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고통”, 고립은 “사회적 연결망 자체가 차단된 상태”로 정의한다.
고립은 감정이 아니라 병
WHO는 고립된 사람일수록 심혈관질환, 당뇨병, 우울증, 자살 위험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는 개인의 건강을 넘어, 교육·고용·의료 시스템 전체에 부담을 주는 구조적 문제다.
예컨대 외로운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또래보다 학업 성취도가 22% 낮고, 외로운 성인은 직업 유지와 조직 적응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WHO는 이러한 고립이 장기화될 경우, 공공의료비 증가, 생산성 저하, 사회 안전망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립의 건강 영향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의과대학 연구진은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 데이터를 분석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60~84세 노인은 당뇨병 위험이 34% 높고, 혈당 조절 실패 확률은 75%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WHO 역시 노년기 고립이 인지 저하, 낙상 위험, 조기사망률과 직결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인은 신체적 질환과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고립에 취약하다면, 청년층은 정신건강과 삶의 방향 상실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19~34세 청년의 약 2.4%, 24만여 명이 6개월 이상 사회와의 연결을 끊고 ‘은둔형 외톨이’ 상태에 머무는 것으로 추산된다. 광주시 조사에선 이들 중 약 30%가 지속적인 신체 통증을, 절반 이상이 정신건강 이상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고립은 단지 우울감이나 위축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 성향이 강한 청년일수록 우울과 불안이 높고, 관계 철수 경향이 이 영향을 심화시킨다. 해외에서는 은둔 상태가 운동 부족, 수면 장애, 체중 증가, 호르몬 변화 등 신체 이상으로 이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고립은 삶의 리듬을 무너뜨리고, 심리적·신체적 회복력을 동시에 약화시킨다.
연령대별 외로움·사회적 고립의 주요 건강 영향
청소년과 노인에게 나타나는 신체·정신·행동적 변화 요약
🧒 청소년
| 범주 | 영향 |
|---|---|
| 인지·학업 기능 | 성적 저하, 집중력 감소, 학습 지속 동기 저하 |
| 정신 건강 | 우울, 불안, 자존감 저하, 수면장애 |
| 사회·행동 기능 | 또래 관계 단절, 대인 회피, 학교 적응력 저하 |
| 신체 건강 | 두통, 위장 장애, 피로감, 식욕 변화 |
| 위험 행동 경향 | 자해, 충동행동 증가, 흡연·음주 조기 노출 가능성 |
👴 노인
| 범주 | 영향 |
|---|---|
| 신체 건강 | 심혈관질환, 당뇨, 면역력 저하, 낙상 위험, 조기사망률 증가 |
| 대사 기능 | 혈당 조절 악화, 식사 불균형, 영양 섭취 저하 |
| 정신 건강 | 우울증, 인지 저하, 치매 위험 증가, 수면 장애 |
| 의료 접근성 | 병원 이용 기피, 조기 치료 지연, 약 복용 불이행 |
| 생활 기능 저하 | 외출·운동 감소, 혼자 식사/배식, 신체기능 약화 가속화 |
| 삶의 의미 상실 | 고립감, 무가치감, 자아 해체, 자살 위험 증가 |
디지털 사회, 관계를 약하게 만든다
청년 고립은 개인의 성향이나 일시적인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은 높은 자기비판 성향과 완벽주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며, 고용 불안정과 경쟁 중심의 교육 구조,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같은 환경 속에서 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방어한다.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회피를 더 정교하게 허용한다. WHO는 비언어적 소통(표정, 몸짓, 침묵 등)이 사라지고, SNS 기반의 연결이 정서적 교감을 대체하면서 관계의 질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세대는 물리적으로는 수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교감은 단절된 채 ‘연결 속의 고립’이라는 역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태는 정서적 고통에서 그치지 않고 기능의 저하로 이어진다. 반복된 사회적 좌절과 피로감 속에서 은둔형 청년은 자존감과 정체감을 상실하고, 자기 인식이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이들의 고립은 단지 혼자 있는 것을 넘어, 삶의 리듬과 관계망이 무너지는 복합적 위기 상태다.
사회적 단절, 새로운 팬데믹
이처럼 사회적 고립은 특정 연령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의 해체, 정서적 단절, 기능 저하라는 경로는 노인, 청년, 아동을 막론하고 다양한 세대에 걸쳐 동일하게 나타난다. WHO는 이러한 위협을 더 이상 개인적 문제로 다룰 수 없다고 경고한다.
정책적 대응 사례로 WHO는 스웨덴을 언급했다. 스웨덴은 모든 아동·청소년에게 단체 여가 활동에만 사용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지급하고, 공립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는 또래 간 대면 교류를 촉진하고 사이버 괴롭힘을 줄이며, 실질적인 사회적 연결 회복을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접근이다.
WHO는 외로움과 고립을 단순한 정서 문제가 아닌, 치료 가능한 건강 위험 요인으로 규정한다. 의료 시스템은 이를 조기에 감지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 정책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예방과 회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WHO 사무총장은 “연결의 기술이 오히려 관계의 질을 파괴하고 있다”며, 사회적 단절은 이제 ‘새로운 형태의 팬데믹’이며, 모든 사회가 이 위기를 대응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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