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나무 위 생활 즐긴다···침팬지급 수목 생활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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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울창한 숲 바닥을 주먹으로 짚으며 걷는 10~20마리 고릴라 무리는 낮은 자세로 낙엽과 흙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선두의 체중 170kg 실버백은 어깨를 낮추고 손등으로 지면을 밀며 전진하고, 가슴을 세 차례 두드려 무리의 질서를 알린다. 뒤따르는 암컷들은 수풀 가장자리를 훑으며 잎과 줄기를 뜯고, 어린 고릴라들은 어른 발자국을 따라가다 덩굴을 당기며 움직인다.

이처럼 고릴라의 전형적인 이동 방식인 주먹보행(knuckle-walking)은 손가락 관절을 지면에 대고 전완근으로 체중을 지탱하는 독특한 형태로, 팔 길이와 상체 근육의 발달과 함께 고릴라를 ‘육상 특화’ 유인원으로 분류하는 핵심 증거로 여겨져 왔다. 먹이도 대부분 지상에서 채집하며, 크고 무거운 체격은 나무 생활에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통념은 비룽가 산악고릴라 같은 개체군의 관찰 사례를 토대로 굳어졌고, 교과서적 해부학 해석과 다큐멘터리 이미지로 반복 재생산됐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장기 생태 관찰 연구는 고릴라가 생각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능동적으로 나무를 오르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170KG 고릴라도 나무 위 오른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와 로키비스타대학교 연구팀은 우간다 부윈디 산악고릴라와 가봉 로앙고 저지대고릴라를 10년에 걸쳐 추적 관찰했다. 분석 결과, 두 집단 모두 하루 활동 시간의 20~30 %를 수목층에서 보냈고, 체중 170 kg 실버백도 예외가 없었다. 나무 위에서는 과일보다 연한 잎·새순·수피를 주로 먹었고, 굵은 가지 사이에 둥지를 얽어 낮잠을 잤다. 과일은 오히려 떨어진 열매를 지상에서 주워 먹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됐다.

실버백은 몸통을 줄기에 밀착시키고 양팔로 원통형 지지대를 감싸 체중을 분산한 뒤, 발목을 틀어 균형을 잡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이는 ‘큰 몸집은 수목생활에 불리하다’는 가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관찰 증거다. 행동생태학의 ‘최적 포획 전략’ 관점에서 보면, 고릴라는 먹이 밀도·에너지 비용·포식자 위험을 모두 저울질해 지상과 수목을 기능적으로 분할 활용하는 셈이다.

고릴라는 생각보다 자주 나무에 오른다. 우간다 부윈디의 산악고릴라와 가봉 로앙고의 서부저지대고릴라는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Martha Robbins]

골격 중심 해석에서 생태 중심 해석으로

이번 발견은 고릴라 행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족보행 골격을 지니면서도 긴 팔을 유지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루시’) 같은 화석은 오랫동안 ‘지상으로 이행 중’이라는 설명으로 정리돼 왔다. 그러나 현생 고릴라조차 대형 체격으로도 지상과 나무를 오가는 혼합 생태를 이어 간다면, 초기 인류 역시 비슷한 전략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커진다.

골격 형태만으로 생활양식을 단정하기보다는 당시 식생 구조, 먹이 분포, 위험 회피 전략 등 환경 변수까지 포함한 종합 모델이 필요하다. 앞으로 고릴라·침팬지·보노보의 장기 행동 데이터와 화석 증거를 결합한 비교 연구가 진행된다면, 체격·공간 활용·진화 압력의 상관관계를 정량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는 체격이나 보행 형태만으로 고인류의 생활 방식을 단정해온 기존 해석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 인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이해하려면, 골격 구조뿐 아니라 서식지 조건과 행동의 유연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분석이 필요하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Martha M. Robbins et al, Gorillas are arboreal apes, Current Biology (2025). DOI: 10.1016/j.cub.2025.05.015

자료: Current Biology / Max Planck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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