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최상위 포식자인 아나콘다는 현존하는 뱀 가운데 가장 거대한 종이다. 평균 4~5m, 일부 개체는 7m에 이르는 이 압도적인 체급은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최근 남미에서 발굴된 화석을 바탕으로 한 연구는 아나콘다가 이미 1240만 년 전, 지금과 거의 같은 크기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거대화는 최근의 진화 결과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완성된 전략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주도한 국제 연구팀은 베네수엘라 팔콘 주에서 발굴된 아나콘다 화석 척추 183개를 분석했다. 이 화석은 최소 32개체에 해당하며, 남미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표본들과 함께 비교 분석됐다. 연구 결과는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에 게재됐다.

현대 아나콘다의 모습(왼쪽)과 발굴된 척추 화석(오른쪽). 척추 단면 구조는 아나콘다의 대형 체급이 고대부터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사진=Jorge Carrillo-Briceño/Phys.org]
마이오세 생태계, 아나콘다는 어떻게 몸집을 유지했나
연구의 시간적 배경은 마이오세 중·후기, 약 1240만~530만 년 전이다. 이 시기는 지구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높고, 남미 전역이 광대한 습지와 범람원으로 덮여 있던 시기다. 이 환경 속에서 오늘날보다 훨씬 거대한 파충류들이 번성했다. 길이 12m에 달했던 거대 악어 푸루사우루스, 3m가 넘는 담수거북 스투펜데미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이후 기후가 냉각되고 습지가 줄어들면서 멸종했다. 반면 아나콘다는 이 거대한 생태계의 붕괴 이후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대형 포식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나콘다는 300개가 넘는 척추뼈를 가진다. 이 특징 덕분에 연구진은 개별 척추의 크기만으로도 전체 몸길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 화석 척추의 길이와 직경을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고대 아나콘다의 평균 체장은 4~5m로 나타났다. 이는 현대 아마존 아나콘다의 평균 크기와 거의 차이가 없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뱀 계통도를 이용한 조상 형질 복원 기법으로 다시 검증했다. 두 방법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아나콘다는 남미 열대 지역에 처음 등장한 직후부터 이미 대형 포식자였으며, 이후 1200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몸집 변화가 거의 없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마이오세가 현재보다 훨씬 더 따뜻한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뱀은 체온을 환경에 의존하는 변온동물로,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수록 성장 한계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고대 아나콘다가 지금보다 훨씬 큰 7~8m급이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화석에서는 그러한 초거대 개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아나콘다의 체장이 단순히 기온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이오세 북부 남미는 오늘날 아마존과 유사한 대규모 습지로 덮여 있었고, 카피바라 같은 대형 설치류와 풍부한 어류 자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됐다. 반수생 포식자인 아나콘다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에 최적화된 에너지 구조를 오랜 기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거대 동물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
마이오세의 거대 생물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푸루사우루스와 스투펜데미스는 사라졌지만, 아나콘다는 살아남았다. 이번 연구를 이끈 안드레스 알폰소-로하스는 아나콘다를 “환경 변화에 매우 강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종”으로 평가했다.
이번 발견은 거대한 몸집이 반드시 멸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정적인 서식 환경과 먹이 구조, 그리고 이에 맞춘 포식 전략이 유지된다면, 대형 포식자도 수천만 년에 걸쳐 생존할 수 있다. 아나콘다는 거대 동물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크기를 줄이지 않고 살아남은, 진화의 예외적 사례로 꼽힌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조 논문: An early origin of gigantism in anacondas (Serpentes: Eunectes) revealed by the fossil record,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 (2025). DOI: 10.1080/02724634.2025.2572967
자료: 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 / University of Cambridge
Science Wave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