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운명을 바꾼 충돌, 마지막 1%가 만든 행성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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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바다가 생기고, 공기가 쌓이고, 땅이 갈라져 움직이기까지. 그 모든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지구가 거의 다 만들어진 마지막 순간에 벌어진 충돌들이었다.
최근 미국 사우스웨스트연구소와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학술지 Nature에 발표한 연구를 통해, ‘후기 부착(late accretion)’이라 불리는 마지막 충돌 단계가 지구를 비롯한 내행성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내행성’은 태양 가까이에 위치한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을 뜻한다.

행성은 만들어졌지만, 충돌은 계속됐다

태양계는 약 46억 년 전 거대한 가스와 먼지 구름에서 탄생했다. 이 구름 속 입자들이 뭉쳐 수많은 돌덩이들을 만들었고, 이들이 서로 충돌하며 점점 더 큰 ‘씨앗 행성’을 만들어 갔다. 이 과정을 통해 지구와 같은 암석 행성이 태어났다.

그런데, 지구가 거의 다 만들어지고 나서도 충돌은 끝나지 않았다. 평균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 크기의 커다란 천체들이 아직 태양 주변을 돌고 있었고, 그중 일부가 막 완성된 행성들에 다시 충돌했다. 이런 충돌은 행성의 질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지구가 물을 가질 수 있었는지, 어떤 공기를 지녔는지, 지각과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를 과학자들은 ‘후기 부착’, 즉 마지막 부착 단계라고 부른다.

충돌 하나가 행성의 성격을 바꿨다

지구형 행성들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그 이후의 모습은 매우 달라졌다. 연구에 따르면 이 차이는 대부분 마지막 충돌들, 즉 후기 부착 단계에서 어떤 충돌체를 어떻게 맞이했느냐에 달려 있다. 충돌의 크기, 방향, 속도, 그리고 충돌체의 성분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각 행성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지구 형성 막바지, 거대한 소행성이 지표에 충돌하는 상상도. 이처럼 마지막 1%에 해당하는 후기 충돌은 지구의 바다, 대기, 지각 구조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수성은 지름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대부분이 금속으로 이뤄져 있다. 과학자들은 수성의 암석성 맨틀이 초기의 초대형 충돌로 벗겨져 나가고, 밀도 높은 철심만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반면 지구는 물과 공기를 갖춘 드문 행성이 되었는데, 후기 부착 시기에 수분과 휘발성 물질을 품은 충돌체들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바다와 대기의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성은 지구와 비슷한 크기지만, 지금은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에 덮여 있고 표면 온도는 납이 녹을 정도로 뜨겁다. 이는 강한 충돌로 대기와 지표가 극도로 가열된 뒤, 수분이 빠져나가고 나머지 대기가 고착된 결과일 수 있다. 화성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표면 특성이 극단적으로 다른데, 연구자들은 이것이 과거 거대한 충돌로 인해 북반구가 깎여 나간 결과이며, 이 과정이 내부 대류 흐름과 지각의 구조, 대기의 유지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스웨스트연구소(SwRI)가 주도한 새 논문은, 내행성(수성·금성·지구·화성)의 진화 과정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 진전을 조명한다. 특히 후기의 대형 충돌이 기존의 판 구조 운동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룬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는 한 판이 다른 판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시적인 섭입(subduction)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금성은 표면 전체가 단일 판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고속 충돌로 인해 중심부가 과열되고 장기간 화산활동이 이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화성의 경우, 낮은 속도의 대형 충돌이 북반구와 남반구의 뚜렷한 지형 차이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 이러한 충돌은 각 행성의 대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기체를 제거하거나 새롭게 보충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진=Southwest Research Institute]

이처럼 충돌은 단순히 표면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성의 내부 구조와 대기, 나아가 생명 가능성까지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부 충돌체는 물이나 탄소 같은 휘발성 물질을 실어 날라 행성에 공급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강한 충돌은 기존에 존재하던 대기나 물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연구팀은 지구의 맨틀에서 측정한 희귀 금속 원소의 농도와 운석 속 동위원소 비율을 바탕으로, 후기 충돌을 통해 지구 질량의 약 0.5%에 해당하는 외부 물질이 추가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물질들은 지구의 바다와 산화 상태, 대기 조성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충돌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 결과는 복합적이다. 충돌체의 성분과 에너지, 입사 방향에 따라 물을 더하기도 하고, 공기를 앗아가기도 하며, 지각을 덮거나 찢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행성의 성격으로 이어진다.

손동민 기자/ hello@sciencewave.kr

참고 논문: Simone Marchi et al, The shaping of terrestrial planets by late accretions, Nature (2025). DOI: 10.1038/s41586-025-08970-8

자료: Nature / Southwest Resear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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