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내린 꿀벌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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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지난 18일 tvN STORY로 방송된 ‘벌거벗은 한국사’에서는 ‘조선! 골든벨’이 진행됐다. 성종이 간절하게 원한 음식이 문제로 나왔는데, 정답은 후추였다. 후추를 재배해 백성을 위한 약으로 쓰려고 한 것이다. 성종의 얘기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반한 것으로, ‘음식’을 검색하면 375건의 결과가 나온단다. 그중 성종대에만 후추를 포함해 97건의 음식이 언급됐다고 한다.

나는 ‘벌거벗은 한국사’를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오래된 책이 어떻게 6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며 지금까지 전해졌는지도 몹시 궁금했는데, <스코 박사의 과학으로 읽는 역사유물 탐험기>를 보니 그 의문점이 풀렸다. 

<조선왕조실록>이 수많은 팩션을 양산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꿀벌의 덕이다. 웬 뜬금없는 말이냐고? 지은이 스코 박사(권태균)의 말이니 일단은 들어보시라.

“인간은 꿀벌이 만든 벌집을 이용해 밀랍을 추출해왔으며, 이러한 방법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스코 박사의 말인즉슨 <조선왕조실록>은 밀랍으로 코팅돼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게다. 이렇듯 우리가 과거를 변주하며 팩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데에는 ‘과학’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 밀랍을 이용한 보존 방법은 600년이 한계였다.

지난 2002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은 <조선왕조실록> 밀랍 본에서 중대한 문제를 발견했다. 밀랍이 녹아 끈적해져서 실록의 페이지가 붙어버리고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슬어 찢어져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밀랍 처리가 안 된 실록이 더 멀쩡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정답은 꿀벌에 있었다.

“그런데 완벽할 것만 같던 이 꿀벌의 비법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인간의 기록이 오랫동안 보존되는 걸 원치 않았던 꿀벌의 부비트랩일까? 자체적으로 산성 물질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60℃만 넘어가도 녹아내리기까지 하는 이른바 ‘자신을 분해하는 자해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액체 기름인 꿀벌의 납질을 고체 왁스(밀랍)으로 만들려면 62~63℃로 가열해야 한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이 온도보다 높으면 다시 액체로 환원된다는 얘기다. 즉, 우리 선조들은 <조선왕조실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과학은 동원했지만, 보관소를 짓기 위한 ‘상식’은 부족했던 게다.

부랴부랴 실록의 손상을 막기 위해 나선 연구원들은 질소가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질소는 손상을 더디게 할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하루바삐 실록에서 밀랍을 제거해야만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은 없는 걸까.

스코 박사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느 동네에나 있는 세탁소에서 찾는다. 바로 드라이클리닝이다. 이 신박한 세탁법은 물세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찌든 때를 유기용매로 녹여 없애는 방법이다. 바로 이 방법을 응용해 이산화탄소의 초임계 유체(supercritical fluid)로 <조선왕조실록>의 밀랍을 제거할 수 있다.

그 원리는 이렇다. 이산화탄소 초임계 유체는 이산화탄소에 매우 높은 압력을 가해서 얻을 수 있는데, 실록의 밀랍이 이산화탄소 초임계 유체에 담가지면 아주 작은 물방울 안에 갇혀 떨어져 나온다. 이때 압력을 낮춰 이산화탄소만 증발시키면 밀랍을 쉽게 분리할 수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은 눈속임의 마술이 아닌 엄연한 과학 현상이다. 이름마저 뭔가 있어 보이는 ‘슈퍼크리티컬 플루이드’다. 우리말로 하면 ‘초임계 유체’를 이용한 과학 마술이라고나 할까?”

<스코 박사의 과학으로 읽는 역사유물 탐험기>의 저자 스코 박사는 고등학교는 이과, 대학교는 공대 출신인 빼박 과학자란다. 게다가 전공과목은 화학공학이다. 이 책은 이런 그의 눈으로 14가지 우리 역사유물을 현미경처럼 살펴본 책이다.

이를테면 흑요석은 토르의 묠니르처럼 무적이며, 우리가 흔히 에밀레종이라 부르는 성덕대왕신종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라인의 뛰어난 오디오 튜닝의 산물이다.

<스코 박사의 과학으로 읽는 역사유물 탐험기>는 시쳇말로 TMI로 가득한 책이다. 그런데 이 TMI가 제법 그럴 듯하다. 최소한 팩트에 픽션을 가미하지 않아서 좋다. 언젠가 이 책의 내용처럼 드라마의 한 장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니 깔깔 웃는다. 다만 이 책에 나온 유물 중 북한에 있는 것들이 많아 당장 보러 가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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