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자원, 소금 쟁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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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언스웨이브


무역이 자유로운 오늘날의 사람들은 소금을 싼값으로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의 귀중함을 잘 인식하지 않고 산다. 바다가 멀거나, 인근에 소금광산이나 소금호수가 없으면 소금보다 귀한 물건이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까지 치러야 했으며, 그러한 ‘소금의 분쟁(紛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소금의 무역

‘소금’이라는 우리말은 농경시대에 가장 귀중히 여겼던 ‘소(牛와) 금(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金은 귀금속만이 아니라 돈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소금을 직접 생산, 배급, 판매하는 전매제(專賣制)를 실시했으며, 이 제도는 조선시대를 거쳐 1955년까지 시행되었다. 지금의 소금은 식품의 하나이지만, 과거에는 귀중한 광물(鑛物)의 하나로 취급된 것이다. 옛 동화(童話) 속에 소금장수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것이 생활에 얼마나 귀중했는지를 말해준다.

유사(有史) 이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의 국가에서는 소금이 가장 중요하게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그래서 소금이 생산되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는 대규모 대상(隊商)들이 소금을 싣고 오고 갔다. 수백 마리의 낙타에 귀중한 상품을 싣고 장거리를 이동하며 교역했던 사람들을 ‘隊商’(caravan)이라 불렀던 것은, 그들이 마치 군대(軍隊)처럼 무장(武裝)을 하고 질서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유럽 사이의 실크로드는 소금도 운반되는 교역로였다. 대상들이 거래하는 상품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도적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소금과 함께 교역되던 물건은 상아, 짐승의 가죽, 구리, 철, 금, 곡식, 유리그릇, 비단 등이었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소금이 생산되는 나라는 부국(富國)이 될 수 있었으며, 소금이 거래되는 항구나 도시는 많은 사람이 사는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과거에 소금이 오가던 교역로를 ‘소금길’(salt road, saltway, salt route)이라 한다. 중국으로부터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과 네팔로 이어지는 소금길, 동서양이 이어지던 실크로드 역시 이름난 소금길이었다. 사진은 낙타 등에 소금을 실고 이동하는 에티오피아의 대상이다. 도로가 없는 광대한 사막나라에서는 지금도 대상들이 활동하고 있다.

소금이 있는 곳에서 문명의 시작

인류의 문명은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고고학자들은 설명한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강 하구(河口)는 생존에 필수적인 물이 있고, 물고기와 해산물을 포함한 식량을 구하기 쉬웠으며, 추위를 막는데 필요한 땔감도 풍부히 떠내려왔다. 더군다나 바닷가에서는 ‘소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고대문명이 탄생하기에 이상적이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는 인류문명이 발상(發祥)하기가 특히 좋은 조건이었다.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가 연결되는 이스라엘 땅에는 소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사해(死海)가 있었다. 성경 속에는 사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왕국의 역사가 등장한다. 사해 주변은 자연환경이 열악(劣惡)하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소금 무역의 중심지였던 요르단 지역은 끊임없이 분쟁이 계속되는 역사의 땅이 되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팔레스타인(옛 이름 가나안)의 도시 예리코(Jericho)에는 약 11,000년 전에 건설된 성벽이 있다. 예리코는 이 시기에 지중해를 통해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소금이 거래되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였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마을은 기원전 4,700-4,200년 전에 형성된 ‘솔리짜타’라는 곳이었다. 불가리아의 ‘프로바디아’ 지역인 이곳에 일찍이 마을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에 소금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솔리짜타에서는 채굴한 소금을 발칸반도 전 지역에 공급했을 것이라고 한다.

불가리아의 프로바디아 지역에 남아 있는 고대 마을의 소금광산 흔적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소금을 두고 수많은 분쟁과 전쟁이 있었다.

급료(給料)를 영어로 salary라 한다. salary의 어원(語源)은 salt money(소금의 돈)이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장병들에게 임금의 일부로 귀중한 소금을 준 데서 나온 말이다. 사진은 로마의 황제 막시미안이 새겨진 당시의 동전이다.

소금 쟁탈 전쟁

지금의 세계는 석유, 석탄, 우라늄, 희토류 원소와 같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자원전쟁을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소금이 자원전쟁의 원인이었다. 다윗왕이 다스리던 히브리 왕국은 소금 교역으로 막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이때 다윗왕은 사해의 소금계곡을 확보하기 위해 에돔 왕국과 전쟁을 치렀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큰 항구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0세기 이후 갯벌지대에서 소금을 생산하여 다른 나라와 교역하여 큰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1482-1484년에 벌어진 ‘페라라 소금전쟁’은 베네치아의 소금을 탐낸 이웃 나라의 침공으로 일어났다.

소금광산이 있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는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地名)이다. 이런 소금 도시들은 자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북군이 승리한 원인의 하나는 남부군의 소금산지인 버지니아주의 솔트빌을 점령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텍사스주와 멕시코가 접경하는 곳을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은 멕시코만으로 들어간다. 이곳의 과달루프 산 아래에는 과거에 강줄기가 변하면서 생겨난 광대한 소금호수(염호鹽湖)가 있다. 1877년에는 이 소금호수를 두고 분쟁을 하다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전쟁(San Elizario Salt War, El Paso Salt War)이 일어나기도 했다.

과달루페 산 아래에 형성된 소금호수이다. 비가 내리면 사해처럼 짠물 호수가 된다.

바닷물에는 염분이 무한하게 녹아 있지만, 수분을 증발시켜야만 마른 소금을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식용할 소금을 확보하려고 전쟁을 벌어졌지만, 오늘날에는 소금(염분) 속에 포함된 귀중한 ‘희유원소’라 불리는 미량원소들까지 얻으려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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