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자국 기반 속도 최대 4.7배 과대 추정
- 알렉산더 공식의 지면·종별 적용 한계
- 행동 범주 중심 해석 및 실험적 보정 제안
티라노사우루스가 허리케인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초원을 질주하고, 벨로키랍토르가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사람을 순식간에 따라잡는 장면은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두 발로 걷는 공룡이 치타 못지않은 속도를 냈을 것이라 여겨 왔다. 실제 전문가들도 오랫동안 땅에 남은 발자국을 단서 삼아 보폭이 길고 깊을수록 빠르게 달렸다고 계산해 왔다.
하지만 최근 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대학교 연구진의 실험은 이 믿음에 제동을 걸었다. 연구팀은 닭 비슷한 몸집의 투구머리기니펄을 진흙 위에서 걷고 뛰게 한 뒤, 발자국과 실제 속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기존 계산식이 진흙 지면의 끌림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속도를 최대 4배 이상 과대 평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공룡의 사냥 방식과 이동 거리 같은 생태 해석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
공룡 속도 계산은 어떻게 이뤄졌나
공룡의 속도를 직접 측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화석 발자국, 즉 ‘트랙웨이(trackway)’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추정해왔다. 가장 널리 쓰인 방식은 1976년 영국 동물학자 R. M. 알렉산더가 제안한 공식이다. 이 식은 보폭(stride length), 엉덩이 높이(hip height), 그리고 동물의 크기에 따른 스케일링 계수를 바탕으로 속도를 계산한다.
이 방식은 혁신적이었다. 공룡의 뼈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정한 간격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면, 보폭이 길수록 빠르게 달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이 공식은 실험실 환경에서, 주로 포유류나 조류가 단단한 지면 위를 걸을 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공룡 발자국이 주로 남아 있는 ‘진흙’이나 ‘젖은 퇴적층’ 같은 부드러운 땅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 공식의 현실 적용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닭 만한 새를 통해 공룡을 실험하다
리버풀 연구진은 이론의 허점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에 착수했다. 공룡과 비슷한 보행 방식을 가진 동물로는 조류가 가장 적합하다. 이 중 ‘투구머리기니펄(Numida meleagris)’이라는 새는 다리 길이, 관절 구조, 발 모양 등이 벨로키랍토르와 같은 소형 수각류 공룡과 유사하다.
연구팀은 기니펄이 다양한 점도의 진흙 위를 걷고 뛰게 한 뒤, 고속 카메라로 움직임을 촬영하고 발자국을 3D로 분석했다. 실험 조건은 실제 공룡 발자국이 보존된 환경과 최대한 유사하게 설계됐다. 이후 새의 보폭과 체형 정보를 기존 알렉산더 공식에 적용해 계산한 속도와, 실제 측정된 이동 속도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동일한 보폭에서 공식이 계산한 속도는 실제보다 평균 2.5배, 최대 4.7배까지 높았다. 특히 천천히 걷는 상황에서 오차가 더 크게 나타났고, 발이 진흙에 깊이 박히면서 보폭이 늘어나는 ‘끌림 효과’가 주요 원인이었다.
느리게 걷는 새도 ‘달리는 것’, 공룡 추격전, 사실은 산책?
공룡이 얼마나 빨랐는지는 단순한 속도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동 속도는 그들의 생태적 역할과 행동 양식을 판단하는 핵심 단서였다. 과학자들은 보폭이 길고 간격이 넓은 발자국을 근거로 ‘이 공룡은 달리고 있었다’고 해석해왔다. 그리고 그 속도가 빠를수록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추격전, 혹은 집단의 장거리 이동과 같은 복잡한 생태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는 이런 해석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과거 시속 40km로 달렸다고 알려진 소형 수각류 공룡의 발자국이, 사실은 시속 8~20km 수준의 느린 구보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속도는 자전거보다 느리며, 일반적인 성인 조깅 속도에 가깝다.
몸집이 훨씬 컸던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시속 27~29km로 달렸다고 추정됐지만, 진흙 지면의 끌림 효과를 반영한다면 실제 속도는 그보다 훨씬 느렸을 수 있다. 기존의 ‘질주하는 사냥꾼’ 이미지와 달리, 느릿하게 걷다가 가까운 거리에서 사냥에 나섰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속도 하나가 달라지면, 우리가 공룡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행동의 전제들이 무너질 수 있다.
추정치를 기반으로 구축된 공룡 생태학의 허상
사실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발자국을 통한 속도 계산의 한계는 오래전부터 인식돼 있었다. 알렉산더 공식은 본래 정확한 수치를 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대략적인 속도 범위를 추정하는 데 쓰이는 근사적 계산식이었다. 공룡의 실제 움직임을 복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널리 사용돼 왔다.
문제는 이 계산값이 점차 독립된 과학적 사실처럼 다뤄졌다는 점이다. “이 공룡은 이 속도로 움직였고, 그 거리에서 저 공룡을 따라잡았을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추정치를 토대로 구체적인 사냥 장면이나 집단 이동 시나리오가 구축되어 왔다. 하지만 계산의 기반이 흔들린다면, 그 위에 쌓인 생태 해석 역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이번 연구는 기존 공식을 단순히 수정하거나 새로운 수식을 내놓지 않았다. 공룡은 종마다 다리 길이, 보행 방식, 체형이 제각각이고, 발자국이 남은 지면도 진흙, 모래, 점토, 자갈 등 물성 차가 크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식으로 이 모든 조건을 포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대신 연구진은 더 현실적인 해석 방식을 제안했다. 발자국을 통한 속도 추정은 ‘걷기’나 ‘달리기’처럼 행동 범주로 제한하고, 시속 단위의 수치 판단은 자제하자는 것이다. 그 대신 다양한 조류와 파충류를 실제 연질 지면 위에서 실험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조건별 비교를 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이 다음 단계로 제시됐다. 공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단일한 답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반영한 반복 관찰과 해석이다.
이번 연구는 공룡의 속도가 느렸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의 해석이 제한된 수식과 단일한 조건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음을 지적한다. 진흙 위에 남은 발자국은 공룡의 이동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지만, 해석에는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공룡의 실제 행동을 이해하려면, 더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적인 실험과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 결과는 기존 접근법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이며, 향후 분석 방식의 정밀화가 요구된다.
김지윤 기자/ hello@sciencewave.kr
자료: Biology Letters/ Liverpool John Moores University via Scim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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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공룡은 생각보다 느렸다…우리가 착각한 이유”